[WBC] ‘타짜’ 김인식 vs ‘사무라이’ 하라 … 감춰둔 비수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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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식(62·한화) 한국 대표팀 감독과 하라 다쓰노리(51·요미우리) 일본 대표팀 감독이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2라운드에서 세 번째 대결을 벌인다. 둘은 조심스럽다. 말로는 서로를 치켜세웠다. 그러나 언제 폭발할지 모를 팽팽한 긴장감이 둘 사이에 흐르고 있다.

서로 다른 인생을 살아 온 김인식 한국 감독(左)과 하라 다쓰노리 일본 감독이 18일(한국시간) 또다시 운명의 대결을 펼친다. 이번 대회 들어 1승 1패 뒤 세 번째 맞대결이다. 일본 대표팀은 17일 오전 1시간 반 가량 공식 훈련을 가졌다. 반면 한국대표팀은 훈련 없이 휴식을 취했다. 사진은 두 감독의 모습을 합성한 것임. [중앙포토]


#‘사무라이’ 하라

일본 대표팀 ‘사무라이 재팬’의 하라 감독은 요미우리 4번 타자 출신이다. 반듯한 외모에 감독을 맡은 5시즌 동안 센트럴리그 우승을 세 차례(일본시리즈 우승 1번)나 차지했을 만큼 지도자로도 성공했다. 탄탄대로만 걸어온 하라 감독은 직진밖에 모른다. 남에게 굽히거나 옆길로 돌아가지 않는다. 이번 대회 목표도 미국과 경쟁해 세계대회 우승을 차지하는 것이다. 그런 하라 감독이 17일 인터뷰에서 “한국은 강한 팀이다. 김인식 감독이 훌륭하다는 사실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50년 넘도록 한국야구를 한 수 아래로 봤던 일본 감독으로서 최대한 적장을 예우한 것이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하라 감독은 1라운드 첫 한국전에서 14-2로 대승을 거두며 어깨에 힘을 줬지만 이틀 후 한국에 0-1 완봉패를 당했다. 하라 감독은 첫 경기 내내 총력전을 펼쳐 콜드게임승을 따냈다. 반면 김 감독은 1회 3점을 주자 승부를 깨끗하게 포기했다. 버릴 카드는 버리고 투수력을 아껴 복수전에 성공했다.

두 번째 한국전에서 0-1로 끌려가자 하라 감독은 8회 말 1사 1루에서 희생번트 작전을 펼쳤다. 2사 2루를 만들었지만 후속 타자가 범타로 물러나며 마지막 기회를 놓쳤다. 당시 하라 감독은 사무라이답지 않게 소극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위기관리 능력에서 김 감독에 미치지 못한 점을 스스로 절감했기에 이후 하라 감독은 말과 행동에 부쩍 신중을 기하고 있다.


#‘타짜’ 김인식

김 감독은 허허실실이다. 어느 순간에도 유머를 잃지 않지만 승부에서는 누구보다 냉철하고 명석하다. 그래서 ‘타짜’라는 별명이 붙었다.

김 감독은 1990년 쌍방울 감독을 시작으로 15시즌을 겪는 동안 한국시리즈 우승을 두 번(95년, 2001년)밖에 맛보지 못했다. 그러나 약팀을 상위권으로 올리는 데 있어서는 탁월한 승부사다. 인간 중심의 ‘휴먼 리더십’으로 코치와 선수의 마음을 사로잡고, 단단한 팀워크를 만들 줄 알기 때문이다.

그의 능력은 국제대회에서 빛난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2006년 1회 WBC에서 일본과 2승1패를 기록하며 4강 신화를 만들어냈다.

김 감독의 전략은 2라운드 첫 경기였던 16일 멕시코전에서 세계를 놀라게 했다. 4-2로 앞서던 7회 무사 1, 2루에서 4번 타자 김태균 타석 때 더블스틸 작전을 냈다. 순식간에 무사 2, 3루가 됐고 김태균의 2타점 적시타가 터졌다. 미국에서 “한국야구는 파워와 스피드가 결합된 강한 야구”라는 평가가 내려졌다.

김 감독은 10명이 넘는 메이저리거를 거느린 멕시코를 무너뜨리고도 겸손함을 잃지 않았다. “일본은 대회 최고의 강적이다”며 상대를 치켜세운 뒤 “일본과 다시 만나 흥분된다. 최선을 다한다는 생각뿐”이라고 말했다. 서로가 만만치 않음을 확인한 두 감독은 조용히 칼을 갈고 있다. 점잖게 오가는 말 속에 비수가 숨어 있다.

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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