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익는 마을]6.경주 교동마을 … 신라의 정취가 한잔에 가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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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신라시대 경주 남산 서쪽 계류가의 포석정. 왕과 문무백관들은 매일 포석정에 둘러앉아 흐르는 물에 술잔을 띄우고 시를 읊었다.

남산을 지나 계림 (鷄林) 을 빠져나온 바람이 달빛에 일렁거릴 때쯤 흥겨웠던 주석 (酒席) 도 끝나고 경주의 밤은 깊어 간다.

경주사람들은 당시 술이 교동법주의 원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문헌기록은 없다.

다만 조선시대 종묘제사에 쓰였으며 '경주 최씨' 의 가주 (家酒) 로 오늘까지 명맥을 이어 오고 있다.

경주에는 '경주 최씨' 집성촌 4곳이 있는데 교동마을이 현존하는 기와집촌으로 가장 규모가 크다.

신라 태종 무열왕의 딸이었던 요석공주는 원효와의 사이에서 설총을 낳았다.

교동법주가 제조되는 교동마을은 요석공주가 살았던 곳. 교동마을에는 2백20여년전 지어진 경주 최씨 정무공 진립파의 파 (派) 종가 (중요민속자료 제27호) 를 비롯해 안채와 사랑채를 갖춘 번듯번듯한 기와집이 8채나 된다.

돌담으로 둘러싸인 고가는 전형적인 영남 사대부집 구조로 인근 계림과 조화를 이루며 운치를 더해 준다.

교동법주는 86년 11월 문배주.면천 두견주와 함께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제86호로, 배영신 (81) 할머니가 기능보유자로 지정받았다.

지금은 아들인 최경 (54) 씨가 기능보유자 후보로 가업을 잇고 있다.

법주는 조선시대 궁중에서 문무백관과 외국사신들만 마시던 특별주. 숙종조때 사옹원 (대궐안의 음식장만을 관리하던 곳) 의 참봉이었던 최씨의 9대조 최국선 (崔國璿) 공이 제조법을 사가 (私家)에 전수해 오늘까지 내려오고 있다.

일제시대에도 총독들이 좋아해 술제조를 막지 않았을 뿐 아니라 무초 초대 주한미국대사가 한국에 부임한 후 당시 이시영부통령과 함께 경주까지 내려와 부임기념 만찬회를 개최했던 일화가 있을 정도로 술맛이 뛰어나다.

<교동마을 위치>

경부고속도로 경주인터체인지를 나온 후 두번째 네거리에서 좌회전해 1백여를 가면 큰 다리가 나타난다.

다리를 건너지 말고 바로 앞에서 우회전해 1백정도 가면 다시 돌다리가 나온다.

다리를 건너면 우측에 경주향교가 위치한 교동마을 안내판이 있고 한정식집인 '요석궁' 이 보인다.

<법주의 특징>

▶특징 = 노랗고 투명한 담황색으로 찹쌀 특유의 찐득한 감촉과 함께 순하면서도 강한 곡주의 맛이 우러난다.

특히 전통방법으로 제조하는 교동법주는 대량생산되는 경주법주와 맛이 다르다.

▶제조 = 찹쌀죽과 누룩가루를 버무려 3~5일간 발효시켜 밑술을 만든다.

2차 발효를 시킨 후 60여일간 숙성시키면 법주가 탄생한다.

▶기타 = 알콜도수는 16도. 하루에 9백㎖짜리 18병만 생산된다.

직접 찾아가 구입해야 하며 가격은 9백㎖에 2만6천4백원. 공장도가와 소비자가가 같다.

전화로 구입할 경우는 10병들이 상자째 주문해야 하며 운반비로 병당 7백원을 더 내게 된다.

0561 - 772 -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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