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가 새물결]해외자금 도입 '쇼비즈니스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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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금융도 이제는 쇼 비즈니스다."

최근 금융가에서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는 얘기다.

근엄하고 점잖기만한 것으로 알려진 뱅커들이 "웬 쇼 비즈니스냐" 는 반문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처럼 한국 은행이나 종금사들의 신용이 손상을 당한 상태에서는 금융에도 쇼 비즈니스가 절박한 필요성으로 다가서고 있다.

쉽게말해 국내 은행이나 종금사들이 스스로를 잘 '포장' 해서 해외에 내놓아야만 귀중한 외화자금을 한푼이라도 싸게 조달할 수 있게됐기 때문이다.

금융기관의 해외 이미지메이킹은 로드쇼에서 좌우된다.

로드쇼란 해외에서 돈을 빌릴 때 해외에서 투자자들을 상대로 벌이는 투자유치설명회다.

과거에는 소액의 경우 로드쇼 없이 사무적인 절차만 거쳐 돈을 빌리기도 했다.

조금 덩치가 크다해도 로드 쇼는 형식적인 절차에 그쳤다.

그러나 최근 한국에 대한 투자심리가 식자 반드시 거쳐야 하는 통과의식이 됐다.

이 자리에서 '우리는 문제없다' 는 식의 주장을 객관적인 자료를 통해 설득해야 한다.

로드쇼가 차입의 성공여부, 금리조건등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얘기다.

국내 금융기관의 로드쇼는 국제금융도시에서 주로 개최된다.

런던에서 유로본드를 발행할 경우 유럽의 주요도시를 다 거친다.

취리히에서 출발, 제네바→파리→프랑크푸르트→런던의 순으로 로드쇼를 개최하는 경우가 많다.

뉴욕에서 양키본드를 발행하려면 LA에서부터 시카고, 밀워키, 보스톤등을 먼저 거친다.

개최장소는 각 도시의 특급호텔이다.

취리히는 사보이, 제네바는 메트로폴, 파리는 릿츠칼튼이다.

런던은 호텔에서 하기도 하지만 전용홀인 벗처스홀도 자주 이용한다.

행사비용은 차입규모나 기관, 장소등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유럽에서라면 보통 1인당 3백달러정도다.

투자자들을 1백명만 초청하면 간단히 3만달러가 드는 셈이다.

홍콩은 다소 싸 1인당 1백50달러정도라고 한다.

주로 장소 임대료, 식사비등 연회 (宴會) 비용이다.

이 비용은 고스란히 차입비용으로 얹혀진다.

예컨대 총비용기준으로 리보 (런던은행간금리)에 0.70%포인트를 더한 조건이라고 하면 차입금액의 0.7%안에 부대비용과 함께 로드쇼 비용이 포함돼있는 셈이다.

요즘 국내 금융기관들이 로드 쇼에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기아사태.금융기관 부실채권.남북관계등 3가지로 요약된다.

투자자들은 이런 질문을 통해 차입기관의 신용도를 테스트하고 금리를 가능한한 올려받으려 한다.

따라서 로드쇼에서 객관적인 자료와 명쾌한 답변으로 투자자들의 의심을 풀어주면 조건이 한결 유리해진다는 것. 지난달 미국에서 15억달러를 차입한 산업은행은 홍콩, 런던, 뉴욕등 4개국 8개 도시에서 로드쇼를 개최해 성공을 거둔 사례로 꼽힌다.

특히 미국에서 개최한 로드쇼에는 재정경제원의 사무관이 동석, 정부정책을 설명해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로드쇼 기간중 초반에는 분위기가 냉랭했으나 설득작업이 진행될수록 호전돼 차입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산업은행은 이런 메시지를 보다 '멋있게' 전달하기 위해 멀티 미디어는 물론 밴드까지 동원해서 분위기를 잡았다.

이런 측면들때문에 금융에 '쇼 비즈니스' 의 성격이 강해지고 있다는 것. 이영진 (李永鎭) 산업은행 국제업무부장은 "해외투자자들에게 한국경제에 대한 신뢰감을 다양한 방법으로 불어넣는데 주력한 덕분에 차입에 성공할 수 있었다" 고 말했다.

해외에서 로드쇼의 비중이 높아지는 것과 함께 국내에서는 기업설명회 (IR)가 주목을 받고 있다.

한불종금은 지난 8월말 조선호텔에서 외국은행의 자금담당자들을 대상으로 기업설명회를 열었다.

국내 금융기관으로서는 처음 연 행사였기 때문에 많은 관심을 끌었다.

당시 한불종금은 부실채권이 총영업자산의 0.15%로 자산건전성에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후 한불종금은 해외에서 계속 순조롭게 돈을 빌릴 수 있었고 다른 종금사들로부터 옮겨오는 예금을 앉아서 받는등 덕을 톡톡히 봤다고 한다.

유경찬 (柳瓊粲) 한불종금 이사는 "기업설명회를 통해 타기관과의 차별성을 부각시키는데 성공했다고 본다" 고 말했다.

남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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