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위석칼럼]대통령의 냄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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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북곽 (北郭) 선생은 표창까지 받은 학식과 덕행의 선비다.

이런 그가 정절과부 동리자 (東里子) 의 규방을 침입한다.

밤중에 북곽선생이 자기네 어머니에게 수작을 걸고 있는 것을 방문 틈으로 엿보던 동리자의 아들 다섯 형제는 천년 묵은 여우가 북곽선생으로 둔갑한 것이라고 의견을 모으고는, 잡아서 그 여우의 몸을 한 부분씩 나눠 갖기로 짜고 몽둥이를 들고 쫓는다.

달아나던 북곽선생은 들판 가운데 거름구덩이에 빠진다.

연암 박지원 (朴趾源) 의 소설 '호랑이의 꾸지람 (虎叱)' 에 나오는 이야기다.

바람따라 세월따라 선거운동의 패션이 이번 대선에서는 합종책 (合縱策) 과 폭로전술로 매진하고 있다.

후보끼리 번갈아 가며 터뜨리는 폭로전에서 사람들은 폭로 자체도 더럽고 내용은 더 더럽다고 구역질을 한다.

다섯명의 후보는 모두 북곽 선생들이면서 동리자의 다섯 아들이기도 하다.

불미 (不美).무능 (無能).배신 (背信) 등의 거름구덩이가 있는 위치는 들판이 아니라 각 후보 자신들의 멀고 가까운 전력 (前歷) 속이다.

'3金' 가운데 JP는 유신 본당이다.

YS와 DJ는 유신체제에 온 몸을 던져 저항한 용사들이다.

그런데 무슨 특성으로 3金이라는 동일 카테고리에 이들을 함께 넣을 것인가.

'대통령이 되려면 무지무지 큰 돈이 있어야 한다' 는 부패 물신 (物神) 신앙이 이들의 공통된 특징이다.

그들은 이 신앙대로 충실하게 실천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우리는 92년 대선 운동의 규모를 기억한다.

돈은 벌든지 훔치든지 빼앗는 수밖에 없다.

제3의 길은 구걸과 기부다.

이 가운데서 액수와 취득경로를 죽기 살기로 숨기려 드는 '아주 큰 돈' 이 있다면 그것은 빼앗은 것이라고 보는 것이 판단의 황금률이다.

정치 권력 (야당도 기업에는 정치 권력이다) 이 부자로부터 돈을 빼앗는 방법은 총을 들이대며 "있는 것 다 내 놔!" 라고 협박하는 것이 아니다.

'돈을 얼마 주면 이런 이권 (利權) 을 배당할게' 라고 사사건건 장사를 하는 것은 작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전두환 (全斗煥) 씨 말대로 '돈을 받았더니 기업을 잘 하더라' 가 주된 패턴이다.

안심하고 기업을 하기 위해서 갖다 바치는 형식으로 빼앗기는 것이다.

국민회의 쪽이 터뜨린 이회창 (李會昌) 씨의 '아들 군대 문제' 폭로가 낳은 새끼 폭로가 신한국당 측에 의한 DJ 정치자금 폭로다.

국민회의 쪽은 YS 대선자금이란 취약한 아킬레스건이 있는 이회창씨 진영에 겁먹을 줄 아는 이성이 있는 한 DJ 정치자금을 폭로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으로 여겼던 것같다.

돈 먹은 죄로 국민의 코를 모두 마비시킬 만큼 최대의 구린내를 뿜으며 감옥에 가 있는 전.노 (全.盧) 두 전직 대통령도 법통상 신한국당의 조상 아닌가.

다만 국민회의 측은 상대편 진영에 이런 이성 대신에 강삼재 (姜三載) 같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불행히도 간과했던 것이다.

폭로전의 이니셔티브를 손에서 놓지 않으려고 이회창 총재 측은 현재의 관성 (慣性) 트랙을 따라 끝까지 폭로 시리즈를 몰고 가려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불행의 정도는 李총재 쪽이 김대중 (金大中) 총재 쪽을 능가할 것으로 보인다.

金총재의 표는 부동 (不動) 의 미니맥스 안장에 올라타고 있어서 불어나기도 힘들지만 줄이기도 힘들다.

李총재 쪽은 全 - 盧 - YS로 이어져 오는 유서 깊은 악취에 더해 자신마저 '폭로광' 이라는 오명 (汚名) 까지 쓰게 됐다.

본래의 대쪽 이미지대로라면 그는 폭로를 통해 DJ의 표를 줄이려 하기보다 자신의 표를 적극적으로 늘리려는 전략을 취했어야만 했다.

이것을 그도 모를 리가 없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번 대선을 폭로전술로 몰아 넣고 있는가.

그것은 어느 후보도 국민의 이해득실에 호소해 자신의 표를 늘릴 정 (正) 방향의 리더십 차별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폭로전 아니면 합종책만 강구하게 된 이유다.

그래서 결론은 다음과 같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그 대통령이 풍기는 구린내를 내년부터 다섯해 동안도 줄곧 맡으면서 지내야 할 판이다.

강위석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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