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서역에서헤매다]5.고원의 양떼도 없는 수행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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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진리는 산문으로 말할 수 없는 것일까. 그것은 시로 말할 수 밖에 없는 것일까. 인도의 시인 타고르도 그런 암시를 남겼다.

그런데 시로 말해도 잘못일 터이고 말하지 않아도 영영 잃어버리는 것이 진리가 아닐까.

그래서 언어도단(言語道斷)이라 했을까.

말도 끊어지고 길도 뚝 끊어지는 길을 가고 있다.

실로 천신만고였다. 40년도 넘은 고물버스를 타고 길 아닌 길이건 길 없는 길이건 가야하는 것이었다. 버스나 버스에 탄 나나 함께 용했다.

바위투성이를 튀어오르며 가야하고 어제까지 있었던 길이 없어져 다른 길을 찾아야 했다. 물 속에 잠긴 길도 건져서 가야했다.

지도에 그려진 길이란 하나의 위안에 불과했다.

후회가 없지 않았다. 지혜는 후회일지 모른다. 그것은 항상 뒤늦게야 찾아오는 것이므로 이런 예측할 수 없는 고행의 상황에서는 당장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제 고소(高所)현상이 본격적이다.

목안에 불이 났다. 몸 속의 내장도 팽창하기 시작한다. 하루에 한끼를 먹고도 속임수로 배고픈 줄 모르게 된다.

호주머니 속의 몇개 작은 사탕 봉지들도 부풀어서 분노처럼 팽팽하다.

먹는 것도 그렇지만 호흡도 삼갈줄 알아야 한다. 심지어는 먼 데 가까운 데 내다보는 풍경에의 의욕도 줄여야 한다.

세상의 탐욕과 야심을 여기 와서나 몽땅 부려놓고 제 본연의 가난으로 돌아가는 절호의 기회가 아닌가.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만권의 책도 진부하기 짝이 없는 탐욕이라고 여겨졌다.

그리하여 책 한 권 없는 빈 책상머리에 청승맞게 앉아있고 싶었다. 무념(無念)의 시가 그때 씌어지리라.

쿤룬산맥 대고원에서 살고 있는 양떼나 작은 짐승들도 이곳에 알맞게 천연조식(天然調息)으로 인한 욕심 없는 수행자였다. 작은 꽃들도 가장 짧은 기간에 겸허하게 자라나 얼른 꽃 피고 얼른 열매를 맺는 것이다.

모두 다 이 세상을 아주 조금만 누리는 것이다.

하지만 이 3천5백m 고도의 광야에서는 밤10시에나 해가 진다.

그 광대무변한 하늘 전체의 화염같은 낙조가 오래 이어가는 장관은 인간이나 아메바나 하나도 다를 바 없는 존재임을 처절하게 반증하는 것 같다.

버스 기사는 회족(回族) 일가족이었다. 늙은 아버지와 두 아들이 번갈아가며 체력 소모를 감당하고 있다. 이렇게 높은 곳에서는 조금만 활동해도 녹초가 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조차도 이런 지경인데 하물며 내 미미한 체력이란 숫제 공짜였다.

이대로 눈 감으면 어찌 미이라가 아니랴. 이따금 양의 시체나 새의 주검이 어쩌자고 미이라가 되어 있었다.

지구의 회전축이 바뀔만한 우주충돌에 의해서 만들어진 태초의 이 고원은 이를테면 50㎞쯤 실컷 가서야 몇가호의 회족 마을이 있고 거기에는 돼지고기를 엄금하는 그들의 모진 삶이 그들의 신과 함께 있는 것이다.

그것은 방치된 세계였다. 누구의 연민도 부질없는 것이었다.

자연이란 인간이 함부로 그 자연과의 일치를 관념적으로 외치는 것을 묵살한다.

그것은 결코 인간을 위해 있는 것도 아닐 뿐더러 자연 자체를 위해 있는 것도 아니다.

어떤 유위(有爲)의 모방설도 받아들이지 않는 모방 불가능의 권력, 즉 무위(無爲)의 권력만이 자연일지 모른다.

아직도 라싸가 아니었다. 이제 곧 라싸에 도착한다고 말하지만 그때 마다 라싸는 더 멀리 있었다.

나는 이런 하염없는 자연 가운데 내팽겨쳐진채 그동안 내가 해독(解讀)하고 있는 많은 인문(人文)의 영역이 실상 내 주관의 한계 안에서 번식한 나 자신의 분신일 수 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인간은 인간 이외의 생존이나 사물에 대해서 조금도 우월한 것이 아니다.

불보살의 눈썹 사이 백호광이 생명의 중심을 나타내는 것이라면 그것은 부처뿐만 아니라 축생계의 돼지에게도 있는 것이다.

돼지를 잡을 때 그 돼지 이마를 단번에 치는 것도 그 백호광 자리가 바로 생명의 핵심이기 때문이 아닌가.

어디 돼지 뿐인가. 사막의 낙타 역시 그 눈의 초시간적인 인상은 그 눈이야말로 도인(道人)의 눈임을 알려준다.

이렇듯이 뭇 짐승들을 인간의 반열에 두지 않는 유교의 도나 서양의 이성이란 무엇인가.

다시 끊어진 길을 이어갈 수 있었다. 며칠전에 눈이 퍼부었고 얼마전에는 난데없는 소나기가 퍼부은 뒤였다. 급류를 건너서 한숨을 쉬자니 그곳에 살 길이 있었던 것이다.

라싸에의 이 험한 길은 밤새도록 이어져 20여 시간만에 끝났다. 그 산만한 칭하이땅의 도시 걸무에서 삼엄한 도시 라싸에 왔다. 가슴이 설레였다.

고도 3천7백m의 분지 바닥이었다.

이 세상이기보다 저 세상인 곳이었다.

그 둘레는 누가 감히 올라갈 생각도 내지 못하는 비정한 산들이 급경사로 둘러서 있다.

수탉만한 까마귀가 사람들에게 “너는 내 먹이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아무런 두려움 없이 선뜻 내려앉기도 한다.

이곳에서 사람이 죽어 산비탈 조장(鳥葬)터에 내다놓으면 그 시체는 까마귀의 차지이다.

죽어서 공양거리가 되는 것이 이곳에서는 가장 자연스럽다.

그러나 라싸에서 나그네를 맞이하는 것은 무엇보다 먼저 기도깃발이다.

애초에는 5색 헝겁의 화려한 깃발이었지만 공중에서 바랠대로 바랜 나머지 너덜너덜 바람의 흔적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 경전글씨‘옴마니반메훔’의 티베트 문자가 씌어진 깃발이 바람결에 휘날릴 때마다 그 경전을 한번씩 읽는 것과 같았다.

그래서 그 기도깃발이 바람에 날려 그 바람의 독경소리를 하늘에 보내는 기도의 공덕이야말로 큰 것이었다.

사람들은 검다. 검은 몽골계. 머리카락도 얼굴도 검고 두꺼웠다. 검정옷은 색갈도 색갈이지만 워낙 빨아입을 줄 모르므로 오랫동안 땟국이 절어 칙칙하게 검은 것이다.

라싸는 오랜 신앙,그것 밖에는 없는 것 같은 그 신앙의 원시성과 그 신앙마저 박해받은 뒤의 무너진 정체성이 새로운 문물과 가장 조악한 상태로 뒤섞이는 곳이었다.

이곳만은 천년전의 그대로 남겨놓아야 할 인류의 합의 없이도 이곳은 내버려지고 있는 것 같았다.

태양광선은 무엇 하나 걸릴 것 없이 직사되므로 그 광선의 열을 모아 물을 끓일 수 있고 산소 60%의 공기희박으로 풍경의 원근이 거의 없다.

그래서 아주 먼 곳도 바로 손 끝의 저 건너인줄 잘못 아는 착시 (錯視)현상은 그것대로 교묘한 경험이 되었다.

나는 두어시간쯤의 선잠을 깬 뒤 바로 인력거를 타고 티베트인 구역과 한족식민 구역을 마구 돌아다녔다.

‘옴마니반메훔’은“연꽃 위에 영광 있으라”와 함께 성(性)의 세계를 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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