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해외 일자리] 중국 속 한인 호텔리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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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장세정 베이징 특파원


호텔리어는 한국 사회에서 묘한 매력을 풍기는 직업이다. 배용준·송윤아·김승우가 등장한 ‘호텔리어’뿐 아니라 송혜교와 이병헌이 ‘올인’에서 사랑을 속삭인 무대도 따지고 보면 화려한 호텔이다. 그렇다면 배경을 중국 베이징(北京)이나 상하이(上海)로 옮겨보면 어떨까. 일찌감치 중국 호텔리어에 도전해 활약 중인 5인의 한국 젊은 남녀를 만났다. 이들로부터 ‘중국 속 호텔리어’로 취업하게 된 동기와 중국 생활을 들었다.

중국과의 첫 인연=이들은 중국과의 인연이 적잖게 작용했다. 웨스틴 베이징 차오양의 김진경(32) 마케팅 담당은 스위스 유학 시절 친하게 지내던 중국인 친구를 따라 베이징·상하이·쑤저우(蘇州)를 여행하면서 중국이 마음에 쏙 들어온 경우다. 그는 미국에서 1년 반가량 일하다 결국 중국으로 인생의 행로를 바꿨다. 힐턴호텔 베이징 박기훈(29) 판촉 지배인은 태풍 때문에 중국에 ‘정박’한 사례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남미의 호텔에 취업을 예약한 상황에서 비자 문제로 잠시 한국에 귀국했으나 태풍으로 부임 시점을 놓쳤다. 결국 입사가 무기 연기되자 그는 어학연수 삼아 중국행을 택했다. 이제는 ‘호텔 분야 최고의 중국통’을 꿈꾸는 붙박이가 됐다.

발로 뛴 입사 도전=쿤룬(崑崙)호텔 정선의(38) 한국시장 담당(부장)은 컴퓨터 디자인 분야 직장 생활 8년을 청산하고 무작정 서해를 건넜다. 2001년 말 중국어 연수를 시작해 중국어시험인 HSK 6급을 딴 게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내친김에 베이징외국어대 무역학과를 졸업했다. 상대적으로 높은 연봉을 제시한 한국계 의류 회사에 눈감고 들어갈까 고민도 잠시 했다. 그러나 그는 2005년 결국 “눈앞의 돈보다 중국 기업에 도전해 보자”고 결심했다. 2005년 8월 그는 이력서 100장을 작성해 무작정 베이징 시내의 5성급 호텔 인사담당자를 찾았다. “당장 채용 계획이 없더라도 자리가 생기면 꼭 연락해 달라”고 부탁했다. 때마침 쿤룬 호텔의 한국인 직원이 퇴직해 행운도 따랐지만 발로 뛴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그는 “호텔은 정기적인 채용 공고 없이 수시로 인력 충원이 이뤄지므로 스스로 발품을 팔아야 그만큼 취업 문이 넓게 열린다”고 조언했다.

힐턴호텔 박기훈 지배인은 원래 스위스호텔 베이징에 먼저 입사했다. 2007년 말 한국인 직원 한 명을 뽑는 데 30여 명이 몰렸다. 미국 유학과 중국 대학 석사(대외경제무역대) 학위를 갖춘 그는 ‘영어와 중국어를 구사하는 한국인’을 찾는 호텔의 눈에 들었다. 1년 만에 좋은 조건으로 힐턴 호텔로 옮겼다.

취업 요건=스위스호텔 베이징 정은경(35) 판촉 지배인은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단언한다. 그렇다면 중국어를 반드시 잘해야 할까. 그는 “나는 중국어를 잘 못하지만 영어로 소통하는 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한국어·영어·중국어를 모두 잘하면 호텔이 원하는 가장 완벽한 직원이 될 수 있다”고 여운을 남겼다. 오크우드 APT 베이징 노경현(30) 판촉지배인은 “미국계 체인 호텔의 경우 영어가 우선시된다”고 전했다. 쿤룬 호텔 정선의 담당은 “영어만 잘해도 취업은 가능하겠지만 중국 기업에서 중국어를 잘하면 직장 생활이 더 풍요롭고 즐거워진다”고 강조했다. 문화의 차이를 이해해야 한다는 조언도 있었다. 웨스틴 김진경 담당은 “차이를 알고 이해하고 맞춰갈 수 있는 배려와 여유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은경 지배인은 “이직이 자유로운 호텔업계에서 인간 관계를 잘 맺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 호텔리어에 도전하려면...

① 영어 회화 실력으로 무장하라

② 중국 문화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라

③ 식당 설거지도 마다하지 마라

④ 원서 접수는 발로 뛰어라

⑤ 어디서나 적응하는 생존 본능을 키워라

⑥ 인적 네트워크(관계망)를 구축하라

⑦ 중국어 회화 능력을 갖춰라

⑧ 눈앞의 돈보다 도전을 즐겨라

⑨ 외국인을 두려워하지 마라

⑩ 개방적이고 융통성 있게 사고하라



중국 호텔리어 대우는…

5년차 월급 500만원, 숙소로 아파트 제공

중국에서 일하는 호텔리어들은 처우에 대체로 만족한다. 물론 연봉은 철저히 능력에 따라 차등 지급된다. 중국의 1인당 평균 소득(2008년 3000달러 돌파)이 한국보다 낮지만 중국의 호텔리어 급여 수준은 결코 한국 못지않기 때문이다. 전반적인 물가가 저렴해 가처분 소득으로 보면 고소득자로 분류된다. 호텔리어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입사 3년차의 경우 월급이 약 1만7000위안(약 340만원), 5년차는 약 2만5000위안(약 500만원) 선이다. 여기에 급여의 2배만큼 보너스가 나오는 달이 4개월 정도 있고, 연말에는 성과에 따라 연봉보다 많은 성과급을 받을 때도 있다.

중국의 호텔들은 외국인 직원에게 호텔이나 아파트를 숙소로 제공한다. 4대 보험료도 내준다. 명절에 귀국할 경우 왕복 국제 항공권도 제공된다. 연간 15일 정도의 휴가에다 한국보다 긴 명절과 국경절 휴가를 장점으로 꼽는 호텔리어도 있다. 쿤룬호텔(사진)의 경우 연간 2000위안(약 40만원)의 의상비까지 제공한다. 물론 외국 생활이다 보니 고충이 없지 않다. 스위스호텔 정은경 지배인은 “아플 때 안심하고 갈 의료시스템이 덜 갖춰져 불편하다”고 지적했다.

한국과 달리 중국에서 일하면 어떤 점이 좋을까. 남보다 먼저 중국 호텔업계에 취업한 이들은 중국에 대한 몰이해를 극복하면 ‘보물섬’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쿤룬호텔 정선의 담당은 “중국은 한국보다 더 개방적이고 개인주의가 존중된다”며 “특히 여성들에게 중국이 한국보다 지내기가 훨씬 편리하다”고 말했다. 오크우드 노경현 지배인도 “한국에선 업무 외적인 사생활에까지 불필요한 관심을 받지만 중국은 업무와 개인 생활의 경계가 분명해 여성들에게 권할 만하다”고 말했다. 웨스틴 김진경 담당은 “지난 1년여 동안 조지 W 부시 대통령,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등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봤다”며 “쑥쑥 커가는 중국의 영향력을 현장에서 확인할 수는 것은 중국에서 일하는 호텔리어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은 열심히 일한 만큼 가능성이 열려 있는 땅”이라며 “젊은이들이 좁은 한국 시장에서 눈을 밖으로 돌려 새로운 시장에 도전해 보라”고 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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