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검찰 무력화도, 기득권 지키기도 안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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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검찰권을 제한하려는 움직임들이 구체화하고 있다. 대통령 자문기구인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사개추위)가 공판중심주의를 축으로 한 형사소송법 개정 초안을 마련했고, 여당은 공직부패수사처(공수처) 설립을 밀어붙일 태세다. 경찰과의 수사권 조정 문제도 난항을 겪고 있다. 검찰총장부터 사개추위안에 반대하고 검찰 내부는 집단 항의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이를 지켜보는 국민은 혼란스럽다.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이러한 움직임들이 정치적 의도에서 정치권력이 검찰을 무력화시키려는 것인지, 아니면 검찰이 지금까지 누려온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것인지 구별하기가 어렵다. 이를 어느 한쪽으로 몰고 가는 것은 위험하다. 최상의 해결책은 각 안마다 무엇이 국민을 위한 것인지 판단해 사안별로 해답을 얻어내는 길밖에는 없다.

개혁안 가운데 검찰이 가장 반발하는 것이 형사 재판제도 개편이다. 사개추위 초안에 따르면 공판중심주의를 강화하기 위해 검찰 조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고 피고인에 대한 검사의 법정 신문도 폐지토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보완책을 요구하고 있다. 플리 바기닝(자백감형제)이나 피고인이 법정에서 거짓 진술을 할 때 처벌하는 사법방해죄, 형벌에 따라 양형을 정해놓는 양형기준법 등의 도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공판중심주의의 목적이 피고인의 방어권과 인권 보장에 있다 해도 이로 인해 법정이 거짓말 경연장이 되거나 범죄자가 법망을 빠져나가서도 안 된다. 공판중심주의는 법체계가 우리와 다른 영.미 제도를 접목시키는 것이라는 점에서 우리 현실도 참작되어야 한다. 따라서 서둘러 이를 추진할 것이 아니라 시간을 갖고 충분한 대비책을 마련해야 옳다.

공수처의 신설은 옥상옥이 될 우려가 있다. 특히 행정부뿐 아니라 입법부와 사법부의 고위 공직자를 대상으로 하는 수사기구를 대통령 직속으로 두겠다는 것은 문제다. 정치적 중립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법조계 등에선 의회 통제를 받을 헌법적 근거가 없어 위헌 소지가 있다는 견해를 제기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최근 법무부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검찰이 갖고 있는 '제도 이상의 권력'을 변화의 흐름 속에서 내놔야 한다"고 공수처의 필요성을 언급한 바 있다. 대통령이 지적한 '제도 이상의 권력'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검찰의 존재가 법에 근거하고 정치적 독립의 결과로 나온 것이라면 검찰권에 대해서는 존중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공수처는 만들 필요가 없다.

검찰.경찰의 수사권 싸움에서 경찰은 형사소송법에 경찰을 수사의 주체로 규정해 달라는 입장이고, 검찰은 수사권의 이원화를 막기 위해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그러나 국민의 눈으로 해답을 찾아내야 한다. 어느 수준까지의 민생 범죄에 대해선 경찰이 수사토록 하는 방안이 그것이다. 그 정착 여부를 보아가며 점진적으로 수사권 조정을 확대할 수 있다.

우리는 정치권력이 검찰을 손아귀에 넣으려는 시도로 이러한 변혁이 추진되는 것에 대해 경계한다. 동시에 검찰도 필요한 개혁을 검찰 박해로 몰고가 기득권을 지키려 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