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파업이 남긴 것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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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병원 노사는 22일 토요 격주휴무제 등을 골자로 한 올해 임단협안에 합의했다. 이로써 병원 파업은 13일 만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간의 파업은 노조.병원.정부, 그리고 환자에게 무엇을 남겼나.

"구구단을 겨우 외우는 학생에게 미적분을 풀라고 하면 되겠는가. 이번 산별교섭은 노사 모두 경험과 준비 없이 나서 병원과 환자만 피해를 봤다." 파업 현장을 지켜본 한 병원 관계자의 말이다.

◇그동안 뭐했나=이번 파업의 핵심 쟁점은 주5일제 근무였다. 이는 지난해 8월 말 법 통과로 예고됐던 것이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정부는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병원뿐 아니라 교대근무가 잦은 철도.지하철 등 다른 공공부문에서도 사정은 비슷하다.

24시간 필수 진료 인력을 유지해야 하는 병원의 특성상 주 5일제를 시행하면 직원이 더 필요하고 환자(수입)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병원들은 지난해 말부터 5~9%가량 수가(酬價.의료행위의 가격)를 올려 달라고 요구해 왔다.

병원협회 성익제 사무총장은 "병원은 제조업과 달리 의료 외의 분야에서 수입을 벌충할 수 없고 오로지 수가에 의존하는 특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의약분업 시행 전에 미리 수가를 반영한 적은 있지만 이번 경우는 그때와 다르다"면서 "제도를 시행해 보지도 않고 수가를 올릴 수는 없지 않으냐"고 말했다.

◇경험 없는 산별교섭=노사 모두 산별교섭에 대한 경험이 부족했던 것도 파업을 오래가게 했다. 산별교섭은 개별기업 노조에서 협상권을 위임받은 산별노조가 사용자 대표와 집단으로 협상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번 산별교섭의 경우 국공립병원과 사립대병원, 민간중소병원 등 여건이 다른 집단 간에 의견통일이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사립대 병원 관계자는 "병원별로 경영상태와 근로조건에 차이가 있는데도 산별교섭을 통해 일괄타결한다는 게 무리가 많았다"고 말했다.

산별교섭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선 노사가 교섭 전에 쟁점에 대해 충분히 논의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하지만 이번엔 정해진 교섭기간을 상견례에 허비하고 파업이 시작된 뒤에야 본격적인 공방을 펼쳤다.

◇정부는 개입 자제=정부는 파업 기간 내내 직접 개입을 자제했다. 노사에 자율로 해결하라는 메시지를 준 것이다. 지난해 두산중공업 파업 당시 권기홍 노동부 장관이 교섭에 참견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이것이 이번 파업의 소득이랄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이는 앞으로 줄줄이 예정된 하투(夏鬪)에 대해서도 적잖은 영향을 줄 전망이다.

중앙노동위원회도 응급실 등 필수업무 유지를 조건으로 직권중재 결정을 보류했다. 그 덕분에 보건의료노조 최초의 합법파업이 이뤄졌다.

그동안 병원들은 필수공익사업장으로 분류돼 파업에 들어가기만 하면 바로 직권중재에 회부됐다. 직권중재가 내려지면 15일 동안 파업이 금지된다. 노조는 이에 반발해 파업을 확대해 노조지도부 검거.해고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벌어졌다. 그러나 이번엔 중노위가 직권중재 결정을 미루면서 끝까지 자율교섭에 힘을 실어줬다.

◇환자 부담 변함 없나=장기적으론 수가 인상 논란이 벌어질 전망이다. 병원의 비용이 상당히 늘어나기 때문이다. 병원으로선 달리 이익을 낼 여지가 없으므로 수가 인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현재 병원협회는 주 5일제에 따른 인건비 부담을 벌충하기 위해 수가를 10%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복지부는 주 5일제로 인한 비용 상승분은 경영혁신으로 흡수해야 한다는 게 원칙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복지부는 건강보험 재정이 2000년 이후 계속 적자를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선뜻 수가를 올리기 힘든 데다 큰 병원만 따로 떼내 수가를 올리기도 쉽지 않은 점을 이유로 들고 있다.

이 밖에 이번 합의안에서 토요일을 휴무일로 규정해 가산료를 두고 논란이 벌어질 수 있다. 현재 평일의 경우 오후 8시 이후, 토요일은 오후 3시 이후 정상 진료비에 30%의 가산료가 붙는다. 병원협회는 토요일이 휴무일이기 때문에 가산료를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복지부는 가산료를 붙여서는 안 된다고 맞서고 있다.

정철근.이승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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