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균 기자의 푸드&메드] 방사선 처리, 음식 세균 잡는 데 그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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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선이라고 하면 일반인은 흔히 원전·원폭·체르노빌 등을 떠올린다. 대부분 막연한 거부감을 보인다. ‘겁나는’ 방사선을 쬔 원료(다시마 분말)를 아기들이 먹는 이유식 제조에 사용한 것으로 확인됐다는 정부(식품의약품안전청과 소비자원)의 발표가 최근 있었다. 이에 엄마들이 우려하고 분개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게다가 이번에 적발된 네 회사는 하나같이 국내 유명 유가공 업체였다.

이 시점에서 엄마들이 가장 궁금한 것은 “방사선을 쬔 원료로 만든 이유식을 사랑스러운 내 아기에게 먹여도 안전한가”일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안전엔 문제가 없다. 이번 사건을 바로 이해하려면 먼저 방사능 오염 식품과 방사선 조사 식품의 차이부터 정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방사(radiation)’라는 단어를 공유하지만 둘은 완전히 다르다. 원폭실험이나 체르노빌·스리마일 등 원전 사고 등으로 인해 생긴 방사능 물질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 방사능 오염 식품이다. 이런 식품은 검사하면 대번 방사능이 검출된다. 반면 비용을 지불해 가며 ‘일부러’ 식품에 방사선을 쬔 것이 방사선 조사(처리) 식품이다. 대개 살균·발아억제·숙성지연 등을 위해 의도적으로 방사선을 쬐어 준다. 식중독균 등 유해 세균을 없애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방사선 조사 식품은 방사능 오염 식품과 달리 방사선이 식품에 잔류하지 않는다. 검지가 힘든 것은 이래서다.

여러 번 반복해서 쬐지 않고 10K㏉(법적 한계) 이하로 쬐는 한 방사선 조사 식품은 안전하다는 것이 세계보건기구(WHO),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미국 식품의약국(FDA) 등의 공식 입장이다. 우리 정부도 감자·건조 향신료·환자식 등 26개 식품에 대해 방사선 조사를 허용하고 있다.

방사선 처리의 허용 범위는 국가마다 다르다. 미국은 쇠고기·굴(우리는 미승인) 외에 영·유아식의 원료에 대한 방사선 조사를 허가했다. 식품안전의 도구로 방사선을 적극 활용한다.

원폭을 직접 경험해 국민 대다수가 방사선이란 단어에 극도로 민감한 일본도 영·유아식 원료에 대한 방사선 처리를 허용했다.

유럽연합(EU)도 영·유아식 원료의 방사선 처리에 관한 한 미국과 같은 입장이다. 우리나라 엄마들을 놀라게 한(방사선을 쬔 원료를 사용한) 이유식이 미국·일본·EU에선 법적으로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방사선을 쬔 원료를 영·유아식에 사용하지 못하도록 법(식품위생법)으로 금지한 나라는 우리가 세계에서 유일하다. “영·유아에게 완전한 영양성(wholesomeness) 등을 보장하기 위해 방사선을 쬔 원료를 사용하지 말도록 권장”한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의 권고를 우리 정부만 충실히 따른 것 같다.

Codex의 권고에서 보듯이 방사선을 쬔 원료를 영·유아식에 사용하지 못하게 한 것은 안전의 문제가 아니라 영양의 문제다. 영·유아식 원료에 방사선을 쬐면 원료에 든 비타민 B와 C가 50%가량 파괴된다. 엄마가 분유나 이유식을 물에 탄 뒤 85도가량의 열을 가하면 비타민 C는 50% 파괴되나 비타민 B는 거의 불변이다. 따라서 방사선을 쬔 원료로 만든 영·유아식을 섭취하면 아기의 비타민 B 섭취가 부족해질 수 있다는 사실은 기억하는 게 좋다.

그러나 최근의 사건으로 방사선을 쬔 식품 모두에 대해 불신하는 것은 곤란하다. 식품에 방사선을 쬐는 기술이 영양손실 등 실(risk)보다 식중독 예방 등 득(benefit)이 많다는 데는 대다수 식품안전 전문가가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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