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Sunday] 오바마의 C-메시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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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호 39면

경제위기 극복의 해결책으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자신감(confidence)’이란 메시지를 선택했다. 13일 폴 볼커 경제회복자문위원회 의장을 만난 후 오바마는 기자회견에서 “우리에겐 뛰어난 기업과 근로자들이 있으며, 우리 경제는 역동적이고 혁신적이다. 나는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음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1930년대 대공황 당시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라고 갈파했다. 그러면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희망과 자신감”이라고 강조했다.

위기의 시대는 실물 못지않게 심리가 중요하다. 과도한 공포는 더 큰 위기를 낳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든다. 아시아 금융위기 때 나타난 한국 사회의 패닉 상태를 떠올리게 된다.

유례없는 경제위기를 겪는 미국 사회는 요즘 어떨까. 언론에는 중산층 가족이 하루아침에 빈민으로 전락해 거리를 떠돌고 있다는 소식이 실린다. 이력서를 적은 티셔츠를 입고 다니는 실직 젊은이의 절망적인 사연도 이어진다.

그런 상황에서 오바마는 자신감과 희망을 말하기 시작했다. 경제위기의 심각성을 강조하며 단기간에 극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하던 취임 직후와 사뭇 달라진 자세다. 각종 개혁정책과 부양책도 빠르게 실행하고 있다. 낙태 미혼모들을 지원하는 단체에 자금 지원을 재개하고, 난치병 환자들의 희망인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지원을 시작했다. 고질병인 의료 시스템과 학교 교육에 대한 개혁에도 나섰다.

역사상 대(大)변화는 위기와 함께 찾아온다. ‘난세에 영웅 난다’는 말도 그래서 나온다. 그 위기를 극복하는 데 가장 좋은 무기는 자신감이다. 눈앞의 두려움을 이겨내면 더 좋은 시절이 올 것이라는 희망,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야말로 고난을 견디는 최선의 묘책이다. 일제 식민지 지배와 6·25 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국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은 ‘하면 된다’는 말로 민족혼을 깨웠다. 중국의 지도자 덩샤오핑은 천안문 사태 후 “개혁·개방은 되돌릴 수 없는 대세”라고 일갈했다. 그런 자신감이 없었다면 중국은 결코 3대 경제대국이 될 수 없었다.

위기가 커질수록 지도자의 자신감과 비전은 빛을 발한다. 정권을 잃은 미국 공화당은 돈을 쏟아 붓는 경기부양 조치가 국가부채와 재정적자만 늘려 국가경쟁력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오바마는 “필요한 조치들을 취했기 때문에 장기적 성장을 이룰 수 있다”고 반박했다.

오바마의 행보를 지켜보면서 한국의 정치 현실이 오버랩된다. 정부가 내놓은 모든 정책을 ‘MB악법’이라는 한마디로 몰아붙이고 대화를 거부하는 야당의 모습이나, 비전 없이 이리저리 휘둘리는 여당의 모습은 민심에 깊은 상처를 남기고 있다. 『그린 코드』의 저자 토머스 프리드먼은 최근 칼럼을 통해 “공화당은 버락 오바마가 성공하는 것보다 차라리 미국이 망하기를 바라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는 한국 정치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타협보다 공멸이 낫다는 식으로 싸우는 여야 정치인의 결기는 꺾일 줄 모른다.

최근 만난 어느 회사의 CEO는 “이번 경제위기가 외환위기보다 극복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 이유는 위기 정도가 더 크기 때문이 아니라고 했다. 그때는 온 국민이 금 모으기 운동까지 벌이며 똘똘 뭉쳐 단합했지만 이번엔 남 탓만 하면서 갈팡질팡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번 위기가 얼마나 오래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최고의 경제학자들조차 말을 아낀다. 해법도 제각각이다. 지금은 자신감과 비전의 두 눈으로 두려움을 정면으로 응시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는 한국 정치가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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