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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외교를 빛낸 ‘영어의 달인’

중앙일보

입력

뉴스위크1993년 미국 시애틀에서 제1회 APEC 개최를 기념하는 환영 만찬이 열렸다. 주최국인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이 일어나 축배를 제의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각국 정상들과 귀빈들이 함께 축배를 들어야 할 와인 잔이 없었던 것이다. “아, 와인 잔이 아직 준비되지 않았군요.”

박진 한나라당 의원 #뛰어난 어학 실력으로 문민정부 시절 YS의 통역 전담… 국회를 대표하는 외교통 #The English Wiz

클린턴 대통령이 당황한 듯 말하자 일순 정적이 회의장에 흘렀다. 그때 누군가 “여기 태평양의 물이 있습니다”라고 외쳤다. 당시 테이블마다 놓여있던 ‘Pacific Water’라는 브랜드의 생수병을 가리킨 것이다. 마침 아태지역 지도자들이 모인 자리이니 나름 의미가 있었다. 클린턴 대통령과 APEC 정상들은 웃음을 터뜨리며 물잔으로 축배를 들었다.

재치 있는 제안의 주인공은 현재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진(53) 한나라당 의원(서울 종로)이었다. 당시 그는 청와대 공보비서관으로서 김영삼 대통령의 통역을 전담하고 있었다. 박 의원이 문민정부 5년간 김 대통령을 보좌하면서 만난 세계 정상은 수십 명에 이른다.

해외 순방만 열여섯 차례 다녀왔다. 단순한 통역 업무만 맡은 건 아니었다. 94년 인도네시아 보고르에서 열린 APEC 회의에선 한국의 무역자유화 기한을 늦추기 위해 막후교섭을 벌였고 95년 워싱턴에서 열린 한국전 참전기념비 제막식에서는 미국 전역에 TV생중계되는 김 대통령의 연설문을 즉석에서 영어로 바꿔 연설하기도 했다.

대통령의 통역 보좌는 국가 간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정상외교 현장에서 대통령의 입과 귀를 대신한다. 따라서 그가 전달하는 한 마디 한 마디에 막중한 무게가 실렸다. 박진 의원의 영어 실력은 각국 정상들로부터도 두루 인정을 받았다. 일례로 영국의 존 메이저 전 총리는 한·영 정상회담 중 “한국 측 통역관이 웬만한 영국 장관보다 영어 실력이 낫다”고 측근에게 언급했을 정도였다.

박진 의원은 국제 외교가에서 폭넓은 인맥을 자랑한다.


사실 박진 의원은 전문 통역훈련을 받은 적이 없다. 심지어 26세가 되기 전까지 외국 땅을 밟아 본 적도 없는 ‘토종’이었다. 남들과 똑같이 중학교에 들어가 영어를 처음 접했고 당시 인기를 끌었던 ‘정통기본영어’ ‘성문종합영어’ 참고서로 공부했다. 그런 박 의원이 영미권 인사들마저 혀를 내두를 만한 영어 실력을 키우고 여당에서 돋보이는 외교 전문가로 거듭나게 된 비결은 뭘까?

지난 2월 25일 국회 외통위원장실에서 기자와 만난 그는 “남다른 관심과 끈기가 남다른 실력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시작은 진득하게 외우는 수밖에 없다. 학창시절 박 의원은 하루에 4~5시간씩 영어책을 붙들고 씨름했다. “그때는 교과서와 문법 참고서를 통째로 달달 외웠어요. 단어도 단어장에 뜻과 관용 표현 등을 적어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다 틈만 나면 꺼내서 읽고 또 읽었습니다.”

이때 익혀둔 영문법과 어휘가 탄탄한 기초를 이뤘다. 그러다가 고등학생 때에 다니던 영어학원에서 호주인 강사와 만났다. 뉴스위크나 타임 같은 시사잡지를 교재로 한 토론 수업이었다. “처음으로 외국인과 직접 영어로 얘기할 기회였습니다. 그 시절만 해도 흔한 일은 아니었죠.”

그동안 암기한 단어와 문법을 실전에 적용해볼 절호의 기회였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실수할까 봐 주저했지만 일단 심리적인 벽을 깨고 나니 대화가 통하더군요. 외국인과 말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차츰 자신감이 붙었어요.” 또 하나 생각지 않았던 깨달음도 얻었다. 언어라는 게 단순한 의사소통을 넘어 문화적 장벽을 허문다는 사실이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건 곧 새로운 세상과 마주하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영어 공부가 더 재미있게 느껴졌다. 고등학교 시절 그는 영어경시대회에서 1등을도맡아 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박 의원은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영문 시사지를 보면서 외교관의 꿈을 키웠던 박 의원은 국제법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에 서울대 법대에 진학했다.

대학 4학년 때 외무고시(11기)에 합격해 외무부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 다음엔 국제정치학을 제대로 공부하기 위해 국비장학생으로 미국 하버드 대학 케네디행정대학원 석사 과정과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정치학 박사 과정을 밟는다. 그 와중에도 영어와의 줄다리기는 계속됐다.

대학 시절에는 외국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듣기 연습을 집중적으로 했다. “당시에는 아직 비디오도 없어서 극장에 가 영화를 봤어요. 그저 무심코 자막을 흘려보는 게 아니라, 먼저 영화를 보고 대본을 구해 읽어봤어요. 그런 뒤 재차 영화를 보면 처음에는 몰랐던 표현들이 귀에 들립니다.”

외무부 사무관 시절엔 외국에 보낼 정부 공문이나 대통령 서신의 초안 잡는 일을 했다. “말하기나 듣기는 어느 순간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게 느껴지지만 영작은 달라요.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작문은 언어 습득의 가장 어려운 단계인 만큼 계속해서 모자란 부분을 채워나가야 합니다.”

사무관 시절 경험으로 영작에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지만 미국에서 처음 제출한 보고서엔 빨간색 펜으로 쓴 지적사항이 가득했다. “문법적인 오류도 있었고 현지에서 잘 쓰이지 않는 표현도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자존심이 상했지만 결과적으로 문맥에 맞게 논리적으로 글을 전개하는 방법을 익혔습니다.”

당시 그의 동기생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다. “서로 보고서를 바꿔 보면서 의견을 주고받고 교수님이 수정해준 보고서를 다시 비교해 읽으면서 함께 공부했지요.” 박사 과정을 위해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 갔더니 또다시 보고서가 빨간색으로 뒤덮였다. “셰익스피어 작품이나 영시 등 고전 문학을 비중 있게 가르치는 옥스퍼드 학풍이 세련된 표현력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됐어요.”

박사 학위를 받은 뒤 박 의원은 영국 북동부의 뉴캐슬 대학에서 정치학 조교수로 일했다. 학생으로서 강의를 듣는 것과 강의를 직접 하는 일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아침에 수업을 가면 강당에 200명의 학생이 앉아 있어요. 수학이나 과학은 문제를 풀면 되지만 사회과학은 처음부터 끝까지 말로 설명해야 하잖아요. 등줄기에 식은땀이 나더군요.”

1시간 강의를 위해 5시간 이상 준비해야 했다. 그래도 말문이 터지지 않아 고생하는 날이 많았다. “소위 ‘근육의 기억(muscle memory)’이라는 게 있어요. 한국어도 며칠 안 쓰다가 쓰려면 말이 잘 안 나오는 것처럼 영어도 마찬가지예요. 심리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영어와 한국어를 할 때 사용하는 입의 근육이 다른 것 같아요. 영어를 말할 때 쓰는 근육을 계속 움직여줘야 그 움직임을 근육이 기억하는 거죠.”

유독 ‘영어용 근육’이 굳어 있는 날이면 학생들에게 질문을 많이 던졌다며 박 의원은 웃었다. “그런데 그게 오히려 학생들의 반응도 좋고 제게도 도움이 됐어요. 영국 학생들은 강의 내용이 이해되지 않을 때엔 바로바로 손을 들어 질문합니다. 그러면 똑같은 내용을 다른 표현으로 설명해줘야 해요. 그렇게 고쳐 말하다(rephrase) 보면 저절로 어휘력이 다양해지죠.”

교수 생활이 안정돼 갈 즈음 박 의원은 한국에서 전화 한 통을 받게 된다. 외무부 사무관 시절 직속 상관이었던 김석우 청와대 의전비서관의 전화였다. 김 비서관은 박 의원에게 당시 새로 취임하는 김영삼 대통령의 통역 보좌관을 맡아달라고 요청했다. 관례적으로 의전수석비석관이 맡아온 자리지만 김 대통령은 해외 대학의 한국인 교수 중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고 국제정치에 박식한 인물을 원했다.

갑작스런 제안에 당황했지만 “10년 동안 외국 생활을 했으니 이제 고국에 돌아와서 나라를 위해 일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는 김 비서관의 말에 귀국을 결심했다. 한국에 들어와서 곧바로 마주한 통역 상대가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이었다. 그전부터 닉슨의 저서를 관심 있게 읽었던 박 의원으로서는 가슴 벅찬 순간이었다.

세 시간에 걸쳐 한·미 관계와 북한 문제, 닉슨 개인의 정치 여정 등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단순 통역이라기보다 닉슨과의 대화에 푹 빠져 함께 얘기를 나눌 정도였다. ‘첫 경험’이 워낙 강렬했던 터라 박 의원은 대통령의 본뜻을 가장 충실하게 전달하는 공보비서의 역할을 하겠노라 다짐했다.

하지만 넘어야 할 벽도 적지 않았다. 특히 김 전 대통령의 강한 경상도 억양은 늘 골칫거리였다. 대통령의 발언을 알아듣지 못해 “각하, 지금 무슨 뜻입니까?”라고 묻는 일이 다반사였다. 또 기계적인 직역보다 문맥에 맞는 의역이 훨씬 본뜻에 가까운 경우도 있었다. “김 전 대통령이 흔히 쓰던 말버릇 중에 ‘우짰든’이란 게 있습니다.

직역하면 ‘anyway’가 되겠죠. 하지만 계속 들어보았더니 ‘우짰든’이란 말 다음엔 늘 결론이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in conclusion’이라고 통역하는 게 훨씬 매끄럽고 정확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순간순간의 어휘 선택이 국가안보와 직결되는 아찔한 상황도 비일비재했다. 1994년 김 대통령과 빌 클린턴 대통령의 전화 통역을 할 때도 그랬다.

북·미 제네바 합의를 앞두고 양국 정상이 북한 핵 문제로 날카롭게 대립했다. 한 시간 넘게 날 선 대화가 이어지다가 김 대통령이 격한 어조로 “이게 무슨 동맹이란 말인가!”라고 일갈했다. 그대로 직역했다가는 한미동맹이 위기에 처할 수도 있었다. 박 의원은 잠시 생각한 뒤 “어떻게 우리 동맹을 건전한 동맹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How can we describe our relationship as a sound relationship)?”라고 보다 부드러운 어조로 바꿔 전달했다. “순간적으로 판단해야 하기 때문에 긴장감이 엄청났습니다.”

정계에 진출한 요즘도 박 의원에게 영어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중요한 매개체다.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제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전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얘기를 한다는 사실이다. “외교통상통일위원회의 역할 중 하나는 한국의 대외관계가 제대로 이뤄지는지 점검하는 일입니다. 따라서 외국의 정치인들과 만나서 국회의 입장을 대변하고, 정책을 설명하고, 때론 교섭 아닌 교섭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가 매일 공식일정으로 만나는 사람이 하루에 보통 6~7명인데 그중 90%가 외국인이다. “그저께 저녁에는 미국 대사와 만났고 어제는 호주 대사, 이라크 외교 위원장, 키르기스스탄 대사를 만났어요. 오늘도 영국 대사, 뉴질랜드 대사와 약속이 잡혀있습니다.” 지난해엔 한미의원외교협의회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관련해 미국 국회의원과 외무부 관계자, 세입세출위원회, 싱크탱크 전문가들과 토론하기도 했다.

박 의원은 대통령부터 국회의원, 고위 공무원들까지 영어 의사소통 능력은 평소에 배양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들이 국제사회에서 던지는 말 한 마디나 행동 하나가 국익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통역을 통한 대화도 가능하지만, 분명한 건 진지하게 속마음을 터놓고 얘기하려면 영어로 직접 대화하는 게 훨씬 설득력 있고 거리감을 좁힐 수 있다는 겁니다.”

물론 영어 실력과 국제 경험만으로 외통위원장 직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뉴스위크 한국판과의 인터뷰 다음날 외통위원회에서는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한나라당이 추진하는 FTA비준동의안 처리를 막으려는 민주당 의원들이 외통위 위원장석을 점거한 것이다. 당파적 이해관계를 떠나서, 서로 다른 문화의 벽을 허무는 게 언어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했던 박진 의원이 정치권에서도 소통의 미덕을 발휘하길 바란다.

새 연재

뉴스위크 한국판이 ‘The English Wiz’를 새로 연재합니다. ‘토종’ 영어로 세계 무대를 누비며 전문성을 인정받는 각계 각층의 명사로부터 영어 공부의 왕도를 듣는 자리입니다. ‘The English Wiz’ 주인공의 생생한 체험담이 한국 젊은이들이 영어라는 날개를 달고 글로벌 인재로 비상하는데 밑거름이 되길 바랍니다.

달인의 칭찬 릴레이

박진 의원은 ‘토종’ 영어 달인으로 김지명 컨벡스코리아 대표, 배유정 동시통역가를 추천했다. 김지명 대표는 우리나라 동시통역가 1세대로 국제회의전문 기획사를 운영하고 있다. 배유정씨는 동시통역, 연극 배우, 방송 등 다방면에서 활약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영어공부 노하우’

1. 반복 연습으로 실전 단어를 늘려라

박진(한나라당) 의원은 우선 ‘활성 단어(Active Vocabulary)’를 가능한 한 많이 만들어 둘 것을 제안한다. 활성 단어란 반복 연습을 통해 머릿속에 저장해 뒀다가 언제든 쉽게 꺼내 쓸 수 있는 실전용 어휘를 말한다. 특별히 고민하지 않아도 단어가 술술 입 밖으로 나오려면 단순 암기로는 부족하다. 소리 내어 발음해 보고 실제 대화에 응용하면서 ‘근육의 기억’을 단련해야 한다.
박 의원은 요즘도 단어 수첩을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다가 생소한 표현을 접하면 틈틈이 기록한다. “단어와 뜻만 적는 게 아니라 자주 쓰이는 문맥과 상용구절을 함께 적어 숙달하면 활용도가 훨씬 높아집니다.”

2. 인터넷 등으로 영어와 스킨십을 늘려라

최근에는 인터넷이 훌륭한 학습 도구라고 그는 강조했다. 인터넷에서 영어회화 강의를 듣거나 외국인과 직접 대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대면 접촉을 통해 직접 응용해봐야 살아있는 영어 공부가 된다. “요즘 학생들이 많이 하는 해외 어학연수나 인턴십도 좋은 방법”이라고 박 의원은 말했다. “해외 체류를 해보면 언어의 벽뿐 아니라 문화의 벽을 뛰어넘을 수 있어요.” 인터넷이든 해외 체류든 영어를 자유로이 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관건이다. “글자를 배우는 게 아니라 표현 하나하나가 지니는 문화를 익힌다고 생각하면 재미가 배가된다”고 박 의원은 말했다.

3. 영자 매체를 최대한 활용하라

“학창시절에 매주 뉴스위크나 타임 같은 시사지를 읽었습니다. 교과서에서는 볼 수 없는 생생한 영어 표현이 많이 나와요.” ‘detente(국가 간의 긴장 완화)’ 같은 단어도 시사지에서 처음 배웠다. “물론 처음에는 기사 한 꼭지를 읽는데도 모르는 단어가 공책 한 권 분량은 나오죠. 일일이 사전을 찾아가면서 단어집 수십 권을 만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다 읽기는 어려우니 관심 있는 주제를 정해 하루에 30분씩 읽고 시사지도 하나 정해서 주말에 1~2시간만 투자해 단어장을 만들면서 읽으면 “몇 개월 안에 영어 실력이 몰라보게 향상될 것”이라고 박 의원은 말했다.

4. 섣부른 포기는 금물이다

박 의원이 가장 좋아하는 영문 격언은 ‘No Pains No Gains(고생 끝에 낙이 온다)’다. ‘Practice Makes Perfect(연습만이 살길이다)’ ‘Where there is a will there is a way(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격언도 좋아한다. “이 세 격언은 어학 공부에 딱 들어맞는 말”이라고 그가 덧붙였다. “나도 아직 학생인걸요. 지금 방송통신대 중국어과 3학년에 다니고 있어요. 더 젊었을 때 배웠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일단 중국어 일상회화에 불편이 없도록 하는 게 올해 목표입니다.”

류지원 뉴스위크 한국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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