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경매, 하반기를 노려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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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지난 16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 경매8계 입찰장.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복도까지 응찰자들로 꽉 들어차던 곳인데 이날은 썰렁했다. 78건의 물건이 입찰에 부쳐졌지만 응찰자 수는 68명에 불과했다. 법원 관계자는 "지난달부터 경매 참여 인원이 눈에 띄게 줄었다"며 "요즘은 강남권 인기 아파트 입찰 때도 사람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부동산 경기 침체로 법원 경매시장에도 찬바람이 분다. 불황의 골이 깊어지며 물건이 쏟아지지만 투자자의 관심은 예년만 못하다. 개발 예상지역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 경매 관련 지표가 좋지 않다. 전문가들은 하반기를 노려보라고 조언한다. 싼 물건이 많이 나올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물건 늘지만 시장은 대체로 냉담=올 들어 경매물건은 꾸준히 늘고 있다. 법원 경매 정보제공 업체인 디지털태인과 지지옥션에 따르면 지난 1~5월 서울.수도권에 나온 신건(새로 입찰에 부쳐지는 물건) 수는 1만9134건으로 지난해 동기(1만807건)보다 77% 늘었다. 이에 따라 1~5월 전체 경매진행 건수도 5만5301건을 기록, 지난해 동기(3만543건)에 비해 81% 증가했다. 지지옥션 조성돈 차장은 "경매시장은 실물경기에 후행하므로 올 연말까지는 물건 수가 계속 증가할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시장 반응은 냉랭하다. 서울.수도권 전체 낙찰가율(감정가 대비 낙찰금액 비율)은 지난 1월 77%에서 5월에는 73.6%로 내려앉았다. 입찰 경쟁률도 지난해 5월 4대 1 수준에서 올 5월 3.51대 1로 낮아졌다. 가장 두드러진 점은 지난해 하반기까지 달아올랐던 아파트 입찰 열기가 식고 있다는 것. 강남권 아파트도 종전에 10여명이 몰렸다면 요즘은 1~2회 이상 유찰돼도 입찰자가 3~4명에 불과하다. 지난 16일 서울중앙지법에 나온 서울 반포동 M아파트 38평형은 2회째 입찰에서 세명이 응찰해 감정가의 89.8%인 6억2870만원에 낙찰됐다. GMRC 우형달 대표는 "부동산값이 많이 떨어지기 전에 감정해 시세보다 높은 물건이 많고, 집값 상승 전망도 불투명해 투자자들이 망설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개발예정지 부근 토지나 뉴타운 지역 내 주택, 강남권 고급 빌라 등 일부 틈새시장은 살아 있다. 토지의 경우 올 5월까지 경매 진행건수는 지난해보다 줄었지만(4325→3779건) 낙찰가율(83.5→89.1%)은 높아졌다. 지난달 14일 여주지원 경매1계에 나온 경기도 여주읍 월송리 밭 612평은 첫회 입찰이었지만 43명이나 응찰해 감정가(2024만원)의 1270% 선인 2억5715만원에 주인을 찾았다. 분당선 전철 연장 호재가 작용한 것이다.

최근 강남권에서 뜨고 있는 것이 80~90평형대 고급 빌라. 경매뱅크 최정윤 차장은 "인기 빌라는 2001년 이후 새로 지은 60평형대 이상으로 낙찰가가 인근 지역 30~40평형대 아파트보다 싸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말했다.

뉴타운.재개발지구 등 재료가 있는 지역 연립.다세대주택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1일 서울중앙지법 경매6계에서 입찰한 서울 동작구 노량진동 다세대 주택은 노량진 뉴타운에 속해 있다는 이유로 24명이 몰려 감정가의 163%에 주인을 찾았다.

◇상품별 경매전략 차별화해야=전문가들은 경매 투자자라면 7월 이후 나오는 물건에 주목하라고 말한다. 법무법인 산하 강은현 실장은 "서울.수도권의 경우 지난해 11월 이후 떨어진 시세가 반영된 입찰물건이 올 7월 이후 서서히 등장하고, 우량 물건의 종류도 늘어 선택의 폭이 넓어질 것"이라며 "가격 경쟁력이 있는 인기 아파트는 신건에도 도전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아파트 외 일반주택은 물건이 많아 지금 당장 입찰해도 괜찮지만 반드시 현장조사를 통해 시세를 확인해야 한다. 다세대.연립주택 등도 과거보다 감정가가 많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일부 개발 호재지역 외에는 실수요 목적으로 접근하고, 재개발구역에선 다가구가 다세대로 쪼개진 것은 아닌지 먼저 파악해야 한다.

상가(근린상가 포함)는 월세가 꾸준히 나오는 편이어서 물건이 많지 않은 편. 최근 나오는 경매물건의 경우 비싸거나 규모가 큰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입찰을 하반기 이후로 미루는 게 좋다고 전문가들은 충고한다.

토지는 개발재료만 믿고 덜컥 낙찰했다가 낭패를 볼 수 있으므로 유의해야 한다. 디지털태인 이영진 부장은 "토지는 군사시설 보호구역이나 상수원 보호구역 등 규제가 많은 만큼 반드시 관할 관청에 토지이용계획확인원 등을 떼어보고 응찰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미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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