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책읽기] ‘한 5년은 죽었다’ 복창하고 경제 체질 바꿔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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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위기와 기회
변상근 지음, 민음사, 244쪽, 1만3000원

잘못된 외신보도가 문제라고 한다. 외환보유액도 충분하고 외채 상환도 걱정할 필요 없단다. 그런데도 외신이 자꾸 문제가 있다고 써대는 바람에 위기가 심각해지고 있다는 게 우리 정부 주장이다. 이른바 외신 리스크다. 급기야 윤증현 장관 등 경제 수장이 출동해 영국 런던서 경제설명회를 여는 등 부산하다.

정말 외신이 틀린 걸까. 평생을 경제기자로 활동했고, 특히 국제경제에 정통한 지은이는 다른 입장이다. 외신이 과장한 부분도 있지만 정부 주장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단다. 가용 외환보유고가 2000억달러 선이라고 하지만 이보다는 적을 것이라 한다. 사놓은 미 국채 등을 제값 받고 팔기는 힘들어서다. 외채 상환능력을 계산할 때 갚지 않아도 되는 환 헤지용 차입을 감안하지 않은 건 외신 잘못이지만, 선박 주문의 취소 사태도 전혀 배제할 수 없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그렇다고 외환위기가 올 것으로 전망하는 건 결코 아니다. 다만 지은이가 비판하는 건 우리 정부의 안이한 자세다. 그는 “한국 경제의 안전은 외환보유고 규모보다 해외 금융시장에서 어떻게 평가되느냐에 더 많이 좌우된다”고 본다. 그래서 외환위기가 있다면 그건 대외신뢰의 위기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한국 정부는 정책 초점을 여기에 진작 맞췄어야 했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의 인식과 대응은 12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 설사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셈이라고 해도 우리 정부가 정말 귀담아 들어야 할 고언이다.

이 책의 강점은 이런 것이다. 이제는 글로벌 경제위기의 원인과 영향 분석 정도로는 독자의 시선을 끌지 못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어떻게 할 것이냐”다. 이 책 역시 한국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제안한, 디테일에 강한 책이다. 가령 지은이는 “한 5년은 각오하자”고 한다. 5년은 죽었다고 복창하고 세계 경제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출렁대는 지금의 경제를 전면 개조(리스트럭처링)하자고 주장한다. 지은이는 또 맨날 외신에서 두드려 맞는 건 국력에 걸맞은 대접을 받지 못한 탓이 크다고 한다. 중국과 인도보다 낮은 국가브랜드, 삼성이나 LG가 ‘메이드 인 코리아’를 내세우지 않는 국가브랜드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제 목소리를 내자”고 제안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외개발원조(ODA)를 늘리는 등 지구촌 문제 해결에 앞장서면 한국을 만만하게 보지는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하긴 지금은 자기 PR도 미덕인 시대가 아니던가.

김영욱 경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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