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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재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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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서태지와 아이들이라는 신인 그룹이 폭발적인 인기를 모으던 시절, 리더 서태지의 예명이 일본 록밴드 X-재팬의 베이시스트 타이지(Taiji)에게서 따온 것이라는 주장이 나온 적이 있었다.

서태지도 한때 록그룹 시나위의 베이시스트였으므로 꽤 그럴 법한 얘기였지만 팬들은 X-재팬이라는 상징적 이름 탓인지 “서태지를 일본음악 추종자로 매도하려는 흠집 내기”라며 격분했다. 결국 서태지 본인이 나서 “타이지와는 무관하다”고 해명했지만, 아직도 이 주장은 가끔씩 등장하곤 한다.

그 X-재팬의 첫 내한공연이 또 연기됐다. 당초 3월 21, 22일 양일간 서울에서 공연할 예정이던 이들은 13일 아침 자신들의 홈페이지에 일방적으로 공연 연기를 선언했다. 5월로 잡혔던 일본 공연까지도 환불에 들어갔다니 언제 다시 열릴지 모를 일이다.

한국에서 일본음악을 들을 수 없던 시절인 1985년 결성된 X-재팬은 ‘일본음악을 개방하는 순간 한국 대중음악은 고사해 버릴 것’이라는 근거 없는 공포감의 근원이었다. 그만큼 당시 이들이 보여준 음악적 성과는 국내와 수준 차가 있었다. 이들의 히트곡 ‘엔드리스 레인’이나 ‘세이 애니싱’은 처음 듣는 사람에게도 왠지 익숙한 느낌을 준다. 90년대 초반, 한국의 여러 작곡가와 가수들이 이들의 노래를 번안하다시피 그냥 베껴 불렀기 때문이다.

정식 수입이 금지됐던 시절에도 서울 남대문 지하상가에선 이들의 베스트 앨범인 ‘베스트 오브 엑스(B.O.X)’를 구할 수 있었다. 보따리 장사들이 한국에 들여온 양만 20만 장 정도는 될 거란 추측이 나돌았다. 세월이 흘러 98년부터 일본 대중음악의 순차 개방이 시작됐을 때 가장 먼저 발매된 음반도 바로 저 B.O.X 앨범의 연주곡 버전이었다.

전면 개방 이후에도 한국 대중음악은 전혀 타격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한류라는 이름으로 한국 가수들이 일본에 진출해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다. 하지만 X-재팬의 모습을 한국에서 볼 수는 없었다. 이들은 97년 해체를 선언했기 때문이었다.

지난해 3월 재결성 선언과 함께 8월 15일 잠실 주경기장 공연이 추진됐지만 “광복절에 서울에서 일본 밴드가 공연한다니 말이 되느냐”는 잡음만 쏟아졌다. 이후 11월로, 3월로 재차 연기된 공연은 멤버 간 불화설 속에 또다시 무기 연기됐다. 서울에서 이들의 공연을 보는 일은 참 지난하기만 하다. 잠잠하다가도 어디선가 터져나오는 망언으로 한순간에 꼬이는 한·일 관계처럼.

송원섭 JES 엔터테인먼트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