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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짜화가 조경규의 사이버갤러리 …인터넷 속에 끔찍이미지 전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1면

북의 문예창작단 같은 이름. 아니면 그들의 대남공작에 말려든 순진한 청년집단. 일단 그런 것은 아님을 확인하고 ‘피바다학생 전문공작실’에 관해 얘기하자. 정말 피바다다. 장난이 아니다. 그래도 방문하고 싶다면,좋다.

먼저 심호흡-. 마음 속의 진지함은 조금도 남김없이 털어야 한다. 어떤 것을 보더라도 놀라지 말고 깔깔 웃어버릴 준비도 필요하다. 단 노약자나 임산부, 18세 이하의 청소년은 입장을 삼가시길.

웹브라우저를 열고, 사이트 주소를 ‘http:// bora.dacom.co.kr/~chosucks/’라고 치면 된다. 잠시 후 푸른 바탕에 커다란 일회용 반창고가 나타난다. 당신은 피바다의 세계에 한발 다가선 것이다. 이곳은 한 예술가와 그가 이끄는 창작집단의 작품이 전시돼 있는 ‘사이버 갤러리’다. <관계기사 42면>

전시장에선 우선 ‘마지막 미소’‘어느 여름날 어느 여고생의 죽음’등 펜화(畵)나 컴퓨터 그래픽 작품인 ‘얼굴’‘마이 컨트리’가 눈에 띈다. 괜찮다면 만화 ‘정크’‘환상대륙’‘외계왕자 난조’도 살펴보도록. ‘빠떼루’‘삼겹살의 마음 고생’같은 음악도 빠뜨리기 곤란하다. 그러고 나면 문제의 피바다학생 전문공작실에 들러보고 싶을 게다.

거기엔 잔인한 이미지들이 있다. 날아가 버린 살점들,드러난 뼈,그리고 뚝뚝 떨어지는 피. 말 그대로 피바다다. 이곳에서 제대로 된 육체는 찾아보기 힘들다. 흉칙한 도구들에 의해 육체들은 ‘자유롭게’ 해체된다. 심지어 야구공이나 선풍기도 육체의 해체를 돕는다.

관객의 반응은 제각각일 것이다. 어깨를 들썩거리며 웃든,짜증을 내든,작가가 지닌 사상의 불온성을 의심하든 그건 당신의 자유다. 그런데 누가 왜 이런 작품을 만드는 걸까.

전방위 사이버 예술가인 74년생 조경규. 그가 주인공이다. 8살때부터 만화를 그렸다. 그가 그린 만화만 해도 6백여권에 이른단다. 고등학생 시절에는 사이버공간을 통해 본격적으로 ‘작품활동’을 했다.

그는 지난해 10월과 올해 3월 작품 전시회를 가졌다. 현재는 ‘파란 마요네즈’라는 3번째 전시회를 열고 있다. 물론 활동무대는 인터넷뿐이다. 현실공간에서 자신의 작품이 받아들여지겠냐는 회의를 떨치지 못해서다.

‘피바다학생 전문공작실’은 비슷한 생각을 가진 네티즌들과 만나기 위해 그가 만든 가상의 동아리다. 실제 공작실 멤버는 77년생인 ‘바다’라는 소녀와 그가 전부다.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동호회원 수준의 ‘피바다 학생회원’들도 있다. 조경규씨의 말로는 “회원들은 세자리수”. 이들은 수시로 의견을 교환한다.

조경규는 생물공학도다. 해부학은 독학했다. 그가 그토록 인체를 잔인하고 그로테스크하게 표현하는 것이 전공과 전혀 무관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의 말. “인체의 내부를 표현함으로써 그 순수한 아름다움에 도달하고 싶다.”

하긴 육체라는 건 어차피 껍질 아닌가. 육체라는 형상을 극단까지 해체시키다보면 껍질은 자연히 벗겨질 것이다. 이를 통해 삶이라는 순수한 결정체를 건져내려는 전략쯤으로 우아하게 해석하는 것도 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그렇게 거창한 것은 아니라고 그는 말한다. “어쩌면 근본적으로는 ‘같이 한번 웃자’라는 것,또 세상엔 이런 그림을 그리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지도 모르죠.”

아하,그는 천편일률적인 기준에 의해 평가받는 예술은 하고 싶지 않은 거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를 대안문화 진영에 위치시키려 한다. 자신을 음악계의 ‘황신혜 밴드’나 문학계의 ‘하일지(소설 경마장 가는길 작가)’에 비유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미술계의 ‘피바다’ 혹은 ‘펄프 아티스트’가 되고 싶은 거다, 그는.

그렇다고 그의 작업을 장난쯤으로만 치부해버리는 건 곤란하다. ‘잔혹미학’의 대표자 영국의 프랜시스 베이컨(1909~1992)도 등장했을 때에는 인정받지 못했다는 사실. 트레버 브라운(http://www.netlink.co.uk/users/gsl/tb-art/)같은 키치작가도 주류에서 배척받고 있다는 점을 기억한다면 말이다.

그는 현재 휴학중이다. 학교로 돌아갈 생각은 없다. 그림을 배우기 위해 유학을 갈 생각이다. 외국에서 그가 더 조잡하고 끔찍한 그림을 배워 올지, 아니면 도를 닦아 올지는 알 수 없다. 우리들이야 다만 그의 공작실 풍경을 숨죽인 채 엿보고 있을 수밖에. 문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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