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하는중국]1.경제실험대장정…발등의 불 국유기업 배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지난달 열린 중국공산당 제15차 전국대표대회는 장쩌민 (江澤民) 국가주석이 제시한 '다양한 소유제의 실험' 을 승인했다.

사회주의 이념의 마지노선으로 일컬어졌던 공유제 (公有制) 원칙이 무너지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이로써 중국 경제는 부패.비효율의 상징물이었던 국유기업에 주식제등 자본주의적 제도를 도입할 근거를 마련했다.

중국식 사회주의를 지탱했던 국유기업들이 본격적으로 개혁됨에 따라 중국은 '제3의 대장정 (大長征)' 으로도 불리는 경제.사회적 격동기를 맞을 전망이다.

중국 지도부가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국유기업에 대한 대대적인 수술에 들어갔다.

장쩌민 (江澤民) 국가주석이 지난 15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소유제 개편및 국유기업 개혁의 본격 추진' 을 선언한 것을 계기로 정부 각 부문과 기업들은 저마다 개혁의 구체적 해법 (解法) 을 찾느라 머리를 싸매고 있다.

중국 지도부는 앞으로 3년내에 낙후된 중대형 국유기업을 전면적으로 뜯어고쳐 자본주의 회사형태와 유사한 현대기업제도를 갖추는 동시에 국유기업 적자를 해소한다는 원칙아래 경제부처와 기업들을 정신없이 몰아 부치고 있다.

국유기업에도 경영자 연봉제를 실시하는 것을 비롯해 한계기업에 대한 과감한 합병.파산, 잉여인원의 대폭 정리, 은행.정부 융자금의 출자 전환을 통한 채무 경감 등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강도의 개혁조치들이 잇따르고 있다.

국유기업들은 이같은 정부 움직임을 '법적.제도적 개혁은 정부가 맡을테니 기업들은 어떻게 해서든 각자 살 길을 찾으라' 는 일종의 최후통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중국이 국유기업 개혁에 국가발전의 명운 (命運) 을 거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개혁.개방 이후 수많은 외국기업이 중국에 진출했다고 하나 중국 경제의 골간은 여전히 국유기업이다.

합자.합작.단독 투자를 통해 들어온 외자 (外資) 기업이 경제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증가세를 보이고 있으나 국유.집체 기업들은 여전히 생산.고용.재정 등의 분야에서 여전히 대들보와 같은 존재다.

예컨대 국유기업들은 지난해의 경우 국가재정수입의 60%를 냈고 도시지역 취업인구의 70%이상을 떠맡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국유기업의 생산액이 전체 산업생산의 30%에 불과할 정도로 경영상태가 부실하며 별다른 회생 가능성도 없다는 사실이다.

지난해 전체 국유기업중 37.7%가 적자를 기록했고 이윤규모 역시 전년도에 비해42.5%나 감소했다.

"국유기업중 3분의1은 적자, 3분의1은 잠재적자이고 나머지 3분의1이 이윤을 내고 있다" 는 말이 있으나 실제로 이윤을 내는 기업은 이보다 훨씬 적다.

단적인 예로 중국정부가 중점 지원하는 3백개 대기업은 숫적으로 국유기업중 0.4%에 불과하나 이들이 낸 이윤총액은 전체의 66%를 차지하고 있다.

나머지 99%이상의 국유기업들이 어떤 상태인지 말해 주는 대목이다.

또 국유기업의 삼각채 (三角債.연쇄채무) 역시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하고 있다.

판매회사는 제조회사에, 제조회사는 다시 원자재 공급회사에 대금지불을 체납하는 삼각채는지난해말 현재 6천억위안 (약60조원) 을 상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국유기업에 대한 은행대출잔액이 2조위안 (2백조원)에 이르나 이중 10% 이상이 회수불가능한 악성채무여서 부실기업의 폐해가 금융위기를 부르는 수준까지 치닫는 지경이다.

국유기업의 경영난은 '총체적 위기상황' 이라 말해도 무방하다.

국유기업간의 과도한 중복투자는 경쟁력을 좀먹고 있고, 국유기업에 부과된 퇴직연금.의료.교육.주택 등 각종 사회복지성 부담과 경영기법의 낙후및 기술.장비의 노후화, 과다한 잉여인력 등 온갖 요인들이 쌓여 국유기업의 경영난을 부채질하고 있다.

국유기업의 종업원 복지비용이 기업 총투자액의 15~20%, 기업이 모든 부담을 져야하는 퇴직.휴직 종업원이 현직 종업원의 25%대에 달한다는 것이 공식 통계로 확인되고 있다.

여기에 대외개방 확대로 인한 외국기업 진출과 가열되는 시장경쟁,가격개혁 지연에 따른 수지악화 등의 외생변수도 국유기업을 동맥경화증에 걸리게 만든 요인이다.

하지만 근원적 문제는 '국가 = 주인, 경영자 = 대리인' 이라는 의식으로 인해 기업내 책임.권한이 불분명한 데다 과거 사회주의 틀안에서 정부.기업 직능이 분리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으로 귀착되고 있다.

중국 정부가 국유기업에 과감한 메스를 들이대지 않을 수 없는, 그리고 江주석이 경제분야 8대 과제중 소유제와 국유기업 개혁을 으뜸으로 꼽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베이징 = 문일현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