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정략적 ‘사법부 흔들기’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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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신영철 대법관의 촛불재판 개입 의혹에 대한 진상조사의 핵심 쟁점은 신 대법관의 행동이 법률 및 사회 통념 차원에서 정당한 사법행정권을 행사했는지, 아니면 부당하게 재판에 간섭했는지에 대한 판단이다. 일부 언론, 시민사회단체들은 진상조사단의 조사 결과가 발표되지 않아 정확한 사실관계가 밝혀지지도 않았는데도 연일 신 대법관의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앞뒤 정황을 다 잘라 버리고 “법원장이 담당판사에게 압력을 행사해 재판에 영향을 미쳤다”라는 말을 듣는다면 누구나 법관의 독립성과 공정한 재판을 해친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법관이 재판을 하는 데 있어 대법원장이나 법원장 등에 의한 지휘·명령을 받지 않고, 대법원장 등도 법관에게 지시나 간섭을 할 수 없는 사법부 내부 작용으로부터의 심판 독립은 헌법상 법관의 독립에서 중요한 내용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신 대법관이 담당판사에게 보냈다는 e-메일의 내용을 자세히 검토해 보고 당시의 정황을 정확히 살펴보면 진상조사단의 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무조건 사퇴를 촉구하는 마녀사냥식 몰아붙이기는 매우 잘못된 일이다. 일부 언론은 “신영철 대법관이 서울중앙지법원장 재직 당시 촛불재판을 담당하는 판사에게 압력을 행사해 파문이 일고 있다. 법원 내부와 시민단체들도 신 대법관의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는 내용만 보도할 뿐이다. 신 대법관이 보냈다는 문제의 e-메일 내용을 비롯한 당시의 정황 및 사실관계에 대한 조명은 매우 소홀히 하고 있다. 야간집회 금지 조항에 대한 위헌제청 사실만을 이유로 재판을 지연하는 데 대해 신속한 형사재판 진행을 위하거나, 재판 중단에 의해 발생할 불법집회 만연 등 사회적 폐해를 고려해 ‘현행법에 따라 통상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의견을 제시한 것은 법원장으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사법행정상 조치라고 이해할 수 있다. 현행 법원조직법(9조)에 따르면 각급 법원의 장은 사법행정 사무에 대한 지휘감독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대법원장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았다. 특히 이 같은 사법행정 사무에는 재판 절차와 관련된 것도 포함돼 있다. 물론 진상조사단의 조사 결과가 나와야 보다 정확한 사실관계를 알 수 있겠지만 현재까지 드러난 몇 가지 사실만으로 한 국가의 대법관을 정치판사로 몰아세워 사퇴를 촉구하는 것은 사법부의 정치적 독립을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사법부의 독립은 행정권이나 정치 권력으로부터의 독립뿐만 아니라 특정의 압력단체나 정치 세력으로부터의 독립도 매우 중요한 것이다. 더욱이 촛불시위 사건의 재판부 배당 문제, e-메일 문제 등이 발생했던 당시는 물론 신 대법관의 국회 인사청문회 때도 전혀 제기되지 않다가 신 대법관이 취임한 시점부터 일부 언론에서 이 문제를 제기한 것에 의구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일부 언론과 시민사회단체들이 신 대법관의 사퇴를 요구하면서 내세우는 가장 큰 명분이 법관의 독립과 재판의 공정성이다. 그러나 현재의 실상은 일부 사회단체나 언론으로부터 압력이나 협박으로 법관이 위협받는 사례가 빈발하고, 이는 사법부 및 법관의 독립에 매우 큰 위험 요소로 작용하고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법관이 헌법과 법률과 양심에 따라 독립해 심판하는 것은 헌법상 법관에게 주어진 권리라기보다는 오히려 법관이 어떠한 내·외부적 압력에도 굴하지 아니하고 오로지 헌법 이념에 따라 심판하라는 국민의 명령이고, 헌법상 주어진 의무인 것이다. 따라서 법관의 독립성을 주장하면서 오히려 법관에게 심리적 위협을 주는 집단적 행동을 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최후 보루라 할 수 있는 사법부를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법관의 독립을 빌미로 신 대법관 사태를 정략적이고 편향적인 ‘사법부 흔들기’로 활용해서는 결코 안 된다.

김민호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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