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안산경제 기아상태…기아 협력업체 800여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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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2일 오후 경기도안산시원시동 E할인점. 1, 2층 매장에 손님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예전 같으면 저녁반찬등을 준비하려는 주부들이 몰려 혼잡할 시간이지만 이날은 종업원과 손님 수가 거의 비슷할 정도로 을씨년스런 분위기다.

이 할인점의 김대연 (37) 총무팀장은 "기아가 부도유예협약에 들어간 이후인 8, 9월에는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

7월 이전에는 하루 입점고객이 3천명이상이었으나 요즘에는 6백명선으로, 하루 매출액도 1억5천만원에서 9천만원선으로 뚝 떨어졌다" 고 말한다.

같은 날 저녁 인근 식당들도 사정은 마찬가지. 한식집 고려정 직원 최은아 (崔銀娥.28) 씨는 "7월 이전에는 한달에 4~5차례 이상 공단근로자들의 회식자리가 있었지만 요즘에는 거의 사라졌다" 면서 "올들어 경기침체로 지난해보다 매상이 20~30% 떨어지더니 기아사태로 인해 7월 이후에는 30%쯤 더 떨어졌다" 고 울상을 지었다.

기아협력업체가 몰려있는 안산시가 기아사태로 이처럼 깊은 시름에 빠졌다.

기아 계열사를 비롯해 협력업체들이 극심한 자금난에 몰리면서 근로자들이 급여나 상여금도 제대로 받지 못해 안산경제가 거의 빈사상태로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한국산업단지공단 서부지역본부와 안산시에 따르면 현재 안산의 반월및 시화공단에 입주해있는 기아계열사는 기아모텍.중공업.특수강등 4개사, 1차 협력업체 89개사, 2차 협력업체 4백여개사. 3차 협력업체까지 포함하면 8백여개사가 기아와 직접 관련돼 있다.

이는 공단 전체 입주업체 2천7백개의 30%정도. 여기에다 컴퓨터및 주변기기.공구.식당재료등 회사운영에 필요한 기자재를 납품하는 영세업체들까지 합하면 기아관련 업체들은 훨씬 늘어난다.

안산시청 지역경제과 차석규씨는 "기아가 안산경제에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 이라고 말한다.

안산시 원곡동 소재 공구유통상가에 입주한 2천여 업체중 40%이상이 기아협력업체들과 거래를 해왔다.

이 때문에 일부 업체들은 문을 닫기 시작했거나 많은 가게들이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이 상가 태창종합상사 홍성왕 (洪成王.35) 사장은 "기아사태 이후 월매출액이 종전의 3분의1수준인 1천만원으로 줄었으며 기아협력업체에 8천만원이 물려있다" 면서 "거의 모든 업체들이 얼마 버티지 못할 것" 이라고 말한다.

이러다보니 공장전문 중개업소에는 팔 물건만 쌓인다.

21세기 중개소 유인석 (柳寅錫) 대표는 "기아 협력업체중 은밀히 공장을 내놓는 경우가 더러 있지만 사려는 사람이 거의 없어 거래되는 것은 극소수" 라고 말한다.

실직자도 늘어만 간다.

6월 구직신청자가 1천1백명이었으나 8월에는 2천19명으로 두배가량 늘었고 실업급여 신청자도 올해 1~9월 5백13명으로 지난해 동기 (52명) 보다 10배가량 늘었다 (안산지방노동사무소 통계) . 세수에도 구멍이 생겼고 금융기관에도 돈이 들어오지 않는다.

안산세무서 관계자는 "식당.술집등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의 폐업신고 건수와 법인세.부가세 체납자가 늘고 있다" 면서 "올해 세수입이 크게 줄 것으로 보인다" 고 말한다.

안산새마을금고의 윤병노 (44) 부장은 "8, 9월 수신고가 줄었고 대출금 연체자도 20%이상 늘었다" 고 한다.

현재까지 안산소재 기아 1, 2차 협력업체중 부도를 낸 업체는 없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하지만 기아의 화의신청으로 어음할인이 전면 중단되고 할인한 어음에 대해 은행들이 협력업체에 어음할인한 돈을 물러달라는 움직임 (환매청구) 까지 보이고 있어 상황은 훨씬 어려워졌다.

안산상공회의소 기획조사실 김철연 (金哲淵) 씨는 "1, 2차 협력업체가 부도를 내면 '부도 도미노' 로 이어져 안산경제는 공황상태에 빠질 것" 이라고 우려했다.

안산 = 신성식.김창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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