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감독 영화 '강원도의 힘'촬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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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의 홍상수감독 (36) 이 두번째 작품 촬영을 위해 머무르고 있는 곳은 강원도다.

그는 속초.강릉.설악산과 동해바다를 누비며 자신의,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사랑의 추억을 더듬고 있다.

지난 8월 조용히 촬영을 시작한 홍감독의 신작은 '강원도의 힘' .96년 기존의 드라마구성을 탈피한 새로운 영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에서 90년대 서울의 지루하고 남루한 일상을 섬세하게 관찰했던 그는 '강원도의 힘' 에서는 사랑의 흔적을 쫓아가는 두 남녀의 마음을 관찰해 나갈 예정이다.

영화 속에서 한번도 만나지 않는 두 주인공은 그러나 강원도에서 사랑의 힘을 확인하고, 관객들은 일상의 지독한 슬픔들을 만나게 된다.

'강원도의 힘' 의 주인공은 30대 초반 대학강사인 상권과 그 수강생으로 한때 상권과 사랑에 빠졌던 지숙. 두 사람은 각기 충동적으로, 혹은 뜻하지 않게 강원도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강원도는 두 사람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추억의 공간. 상권은 여행길에서 지숙이 남긴 여행의 흔적들을 발견한다.

홍감독은 두 사람이 각기 겪게 되는 비슷한 일들과 그에 반응하는 그들의 모습을 통해 그들이 공유했던 '사랑' 의 의미를 관객들에게 보여주고자 한다.

"동일한 시간, 동일한 공간에 두 사람은 존재한다.

하지만 두 사람은 끝내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우리는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며 즐기고 있다" 는 홍감독의 설명처럼 '강원도의 힘' 은 영화에서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해체하고자 시도한다.

기승전결의 흐름을 지닌 기존 드라마의 관습을 파괴하고, 여주인공 지숙의 시간을 중심으로 한 1부와 상권의 시간을 중심으로 한 2부로 구성해 따로, 또 동시에 존재하는 두사람의 시간과 공간을 재구성하게 된다.

홍감독은 영화에 일상의 느낌을 주기 위해 올로케이션으로 촬영을 진행하고 있으며 스타시스템을 배제, 신인연기자들을 캐스팅했다.

상권 역의 백종학은 박철수 감독의 '산부인과' 와 곽경택 감독의 '억수탕' 을 기획한 프로듀서. 연기경험이 없는 그는 그의 사진을 본 홍감독의 캐스팅제의를 선뜻 받아들여 주연을 맡았다.

지숙역의 오윤홍 역시 대학시절 약간의 아마추어 연기경험밖에 없는 신인. 홍감독은 촬영 시작 전 배우들과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면서 편안한 분위기를 잡아 즉흥대사와 자연스런 연기로 길게 이어지는 '일상적인 느낌' 의 화면을 이끌어내는데 신경을 쓰고 있다.

홍상수 감독은 '사랑' 이라는 지극히 감정적인 환상을 감정이 아닌 두 사람의 일상적인 행동과 상황을 통해 정교하게 보여주고자 한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에서 고전적인 영화의 틀을 벗어난 동시대적인 영화감각을 보여주었던 홍상수 감독이 두번째 작품에서는 어떤 새로운 영화언어를 보여줄 것인지 기대된다.

'강원도의 힘' 은 연말 혹은 내년 초에 개봉예정이다.

이 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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