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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금 80% 날렸는데 환차익 세금 내야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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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1. 2006년 3월 ‘미래에셋차이나디스커버리’펀드에 1억원을 가입한 A씨. 지난해 10월 주가가 급락하자 손절매를 결심하고 반토막 난 펀드를 팔았다. 하지만 뒤늦게 손실 난 펀드에서 900만원 가까운 세금이 공제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다른 금융소득도 있는 A씨는 3년간 금융소득 종합과세자에 해당돼 이 펀드에 대해서만 세금을 4000만원 넘게 물었다.

#2. 지난해 10월 5000만원을 러시아 펀드에 투자한 B씨는 생각과 달리 주가가 떨어지자 일주일 만에 환매했다. 환매 뒤 세금 징수 내역을 본 그는 깜짝 놀랐다. 과세 대상 이익이 1000만원을 넘어 150만원을 세금으로 납부하게 됐기 때문이다.

주가 급락에 속앓이 하던 해외 펀드 가입자들이 이번엔 세금 때문에 속이 터지고 있다. 투자금이 반토막 났는데도 소득세를 내야 하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환차익을 거뒀으니 반토막 펀드도 세금을 내야 한다’는 설명에 투자자들은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우리CS러시아익스플로러’ 펀드는 지난해 5월 이후 수익률이 -80.8%다. 하지만 과표 기준가는 같은 기간 1000원에서 1156원으로 15.6% 뛰었다. 과표 기준가가 오른 만큼 소득세를 내고 나면 실제 수익률은 -83.2%로 더 떨어진다. 도대체 과표 기준가는 왜 이렇게 많이 오른 걸까.


이유는 2007년 6월 개정된 조세특례제한법 규정에 있다. 해외 펀드의 주식 관련 차익에 대해 올해 말까지 세금을 물리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해외 펀드 열풍을 불러온 바로 그 규정이다.

비과세 대상이기 때문에 주가는 아무리 떨어져도 과표 기준가에 반영되지 않는다. 대신 환차익엔 세금을 물린다. 따라서 요즘처럼 주가와 원화 가치가 동시에 급락했을 땐 수익률은 떨어지는데 과표 기준가가 오르는 결과가 생긴다. 신영증권 오광영 펀드애널리스트는 “2007년엔 글로벌 증시가 호황이고 원화 가치가 오르던 때여서 이런 조항이 투자자에게 유리해 보였다”며 “주가가 급락하고 환율이 치솟으면서 이 규정이 오히려 아픔만 주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만약 해외 펀드에 대해 100% 환헤지를 했다면 환차익이 없으니 세금도 없다. 하지만 주식 가격과 펀드 자금이 매일 바뀌기 때문에 100% 환헤지를 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환헤지를 한 해외 펀드도 세금에서 자유롭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지난해 원화 가치가 급락하자 일부 펀드는 환헤지 비율을 낮추기도 했다. 우리CS자산운용 김동석 과장은 “러시아 펀드는 지난해 9월 이전엔 환헤지 비율을 90~110%로 유지했지만 환율이 급변동하면서 추가 증거금 납입 요구(마진콜) 위험이 커져 비율을 50%로 줄였다”고 설명했다. 그만큼 환차익이 커졌고 세금도 늘었다.

펀드 환차익이 4000만원을 넘는다면 5월 금융종합소득과세 신고 때 또다시 세금을 내야 한다. 반토막 펀드에 세금이 두 번 붙는 투자자도 생길 수 있다.

해외펀드 투자자들의 불만이 커지면서 ‘해외 펀드 세금 반환 소송’ 카페도 생겼다. 카페 운영자인 법무법인 진평의 김규동 변호사는 “세제 지원 목적으로 만든 비과세 규정이 오히려 세금을 더 거둬가는 결과를 낳고 있어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펀드에 대한 소득세는 매년 결산일(펀드 설정일)과 환매일에 매긴다. 따라서 지난해 결산일에 이미 소득세를 냈지만 이를 모르고 지나간 투자자도 많다. 김 변호사는 “결산할 땐 따로 투자자에게 통지하지 않기 때문에 내역을 요청해 받아봐야 세금을 얼마 냈는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한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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