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에너지 노조도 “임금 동결” … 울산 지역에 ‘노사 화합’ 훈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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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의 경영 위기가 왔을 때는 노조도 고통 분담을 해야 한다는 게 조합원의 뜻임을 확인했습니다.”

SK에너지 노조 이정묵(47) 노조위원장은 10일 오후 조합원 찬반 투표에서 임금동결·호봉승급분 반납안이 통과되자 이같이 말했다. 노조 전체 조합원 2556명 중 2412명은 이날 투표에 참여했으며 1726명(71.6%)이 반납을 지지했다.

SK에너지 노조는 한국노총 소속이지만 울산 지역에서 강성 노조로 손꼽혀 왔다.

지난달 중순까지도 성과급 추가 지급을 요구하며 회사와 한 달여간 심각한 갈등을 빚었다. 이 노조위원장은 강성 노동운동을 주도하다 1997년 해고당한 전력이 있다.

그러나 회사가 지난달 두 차례의 노사 대토론회에서 올해 사업계획 이름을 ‘서바이벌 플랜’으로 정할 만큼 어려운 속사정을 털어놓자 노조도 이에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노조는 지난달 26일 “유동성(자금) 추가 확보에 노조가 적극 협조한다”는 등의 내용이 담긴 ‘노사 공동 선언문’을 체결했고 ‘성과급 투쟁’의 중단을 선언했다. 또 호봉승급분 반납을 내용으로 한 회사 자금 확보 협조 방안을 마련, 노조원들을 상대로 경영설명회까지 열며 설득 작업을 벌였다.

◆민주노총 소속 기업도 동참=‘노동운동 도시’ 울산에 ‘노사 화합’의 훈풍이 불고 있다. 예년이면 춘투가 시작될 시기인 3월에 이미 11개 사업장에서 노조가 단협을 포기하고 회사의 위기 극복 노력에 동참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는 2004년 민주노총을 떠나 독자 노선을 걸어온 현대중공업 노조에서 시작됐다. 지난달 18일 노조 대의원대회에서 “회사가 어려운데 투쟁을 외치면 사기”라며 올해 임금인상안을 회사에 위임하기로 결정했다. 대신 회사는 3년 고용보장을 약속했다.

이어 발전소 계측제어기기 업체 삼창기업, 석유화학 업체 한국바스프 화섬공장, 금호석유화학의 울산수지공장과 울산고무공장 등 한국노총 소속 4개 노조가 임금위임·동결·노사화합 선언으로 노사상생을 다짐했다. 선박부품 업체 성진지오텍, 삼성SDI, 삼성석유화학, 삼성BP 등 노사협의체로 임금 협의를 하는 사업장 4곳도 임금동결을 결의했다.

노사 화합 선언을 하지 말라는 지침을 받고 있는 민주노총 소속 기업의 노조도 예외가 아니다. 민주노총 화학섬유연맹 사업장인 ㈜NCC 노조는 5일 노사 화합 선언식을 열고, 올해 임금동결과 고용보장에 합의했다.

김주석 NCC 노조위원장은 “사측과 반목만 되풀이했던 기존의 노사 관계로는 경제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며 “지금 같은 위기에는 고용안정이 최우선 과제라고 생각해 조합원을 설득했다”고 했다.

이정조 울산노동지청장은 “현대중공업을 필두로 노사가 화합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분위기가 한국노총·민주노총을 가리지 않고 울산 지역 전체 사업장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울산=이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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