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영화 “가늘고 길~~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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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지난달 12일 개봉한 브래드 피트 주연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가 관객몰이를 하리라고 점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감동지수는 높아보였지만 상영시간이 2시간46분이나 돼서 여느 영화보다 하루 상영 횟수가 2회나 적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9일 현재 전국 관객 수는 152만 명. 기대 이상의 호조다. 주목할 점은 스크린 수다. 개봉 당시 212개였던 스크린 수가 상영 한 달이 가까워오는 현재 190여개로 거의 줄지 않았다. 극장이 스크린 수를 줄이지 않는 이유는 장사가 되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 예매순위도 ‘왓치맨’ ‘워낭소리’에 이어 3위다.

요즘 극장가의 새로운 현상 중 하나가 ‘벤자민 버튼의…’와 같은 ‘장기흥행’이다. 할리우드처럼 개봉 첫 주에 가급적 많은 스크린을 확보하는 소위 ‘와이드 릴리즈(대규모 개봉)’ 방식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기대작의 경우 첫 주 확보하는 스크린 수는 보통 350∼400개가량. 지난해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은 825개, ‘캐리비안의 해적3’는 912개에 달할 정도였다. 이러다 보니 작품성이 어지간히 따라주지 못하면 개봉 2주를 맞아 관객 수가 뚝 떨어지거나, 심하면 개봉 1주일도 안 돼 간판을 내리는 영화도 많았다. 그래서 영화계에서는 “대규모 물량 위주 개봉 방식에 낀 거품을 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올 장기흥행의 물꼬는 독립영화 ‘워낭소리’가 텄다. 240만 명을 돌파한 ‘워낭소리’는 지난달 말 개봉 6주 만에 예매순위 1위를 차지하는 저력을 과시했다. 6주 만에 1위로 올라서는 건 좀처럼 없는 일이다. 예매사이트 맥스무비에 따르면 ‘워낭소리’는 흥행 가늠자 중 하나인 주말 상영횟수 순위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왓치맨’ 개봉 직전까지 1위(6일 기준 4225회)였다. 개봉 첫 주(1월 15일)에는 98회였다. 무려 43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벤자민 버튼의…’는 할리우드 화제작이지만 개봉관 수를 무턱대고 많이 잡지 않은 ‘똑똑한’ 개봉 전략을 택해 눈길을 끈다. 이 영화의 배급사 워너브라더스 심영신 과장은 “감동적인 내용과 브래드 피트의 호연 등을 고려할 때 대규모 개봉보다 작은 규모로 출발해 꾸준히 가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5일 개봉한 독립영화 ‘낮술’도 2만 명을 넘었다. 하루 2회밖에 상영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성적이라 더욱 놀랍다. ‘낮술’ 개봉 당시 상영관은 13개에 불과했지만, 좌석점유율은 50%를 넘었다. 한 번 틀 때마다 좌석이 절반 이상 찼다는 얘기다. 이 영화를 배급한 영화사 진진의 장선영 팀장은 “입소문이 나면서 일부 극장에서는 최근까지도 주말 좌석점유율 40%를 유지했다”고 설명했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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