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둥을 두고 벌어진 중국 권력의 미묘한 동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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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인민대회당에서 전인대 광둥대표단을 접견하고 있는 후진타오 주석(오른쪽 두번째)과 왕양 광둥성 서기

중국의 정치 판도에서 광둥(廣東)의 위상은 특별하다. 지난해로 30주년을 맞은 중국 개혁·개방의 시발점이 바로 광둥이다. 덩샤오핑(鄧小平) 이후 역대 중국 최고 지도부의 권력 판도를 읽는 데서도 광둥은 그 풍향을 짐작케 하는 일종의 계기판이었다. 예를 들어 권력 기반이 다소 미약했던 장쩌민(江澤民) 주석 겸 당 총서기가 1998년 자신의 심복인 리창춘(李長春)을 광둥성 당 서기로 내려보내 이 지역의 경제·금융계를 확 뒤집어 놓은 일화가 대표적이다. 장쩌민은 리창춘을 통해 광둥성의 기강을 잡고 이 지역을 자신의 세력권에 확실히 집어 넣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중국 집단 지도체제 속의 권력 1인자는 더 좋은 지방정부를 자신의 관할 하에 두기 마련이다. 경제가 발달한 산둥(山東)과 상하이(上海), 광둥 지역 지방 당조직의 '권력 톱'으로 누가 임명되는가는 따라서 중국 권부내의 권력 판도가 어떻게 나눠지는가에 대한 대답이다. 경제적으로 가장 활발한 지역의 하나인 광둥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개방과 가장 관련이 깊은 곳이어서 특히 중국 권력의 풍향을 짐작하기 좋다.

2007년 광둥성 당 서기에 취임한 왕양(汪洋)은 공산주의청년단 출신으로 정치적 후견인은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 말하자면 그는 후진타오의 직계 인맥이다. 전임 장더장(張德江) 광둥성 당서기가 장쩌민 계통의 마지막 광둥 대리 통치인이었다면 왕양은 '후진타오 시대의 광둥 대리 통치인'으로 비유할 수 있다. 그는 취임하자마자 제3차 사상해방(思想解放)을 부르짖었다.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추진하면서 사고의 획기적인 전환을 외치며 했던 말을 그가 다시 꺼낸 것이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과감한 구조조정을 담은 그의 행동은 그러나 온건한 방식의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국무원 총리 원자바오(溫家寶)와 최근 마찰음을 빚었다. 후진타오 인맥의 왕양이 경제정책의 큰 방향에서 중국 경제를 총괄하는 원자바오 총리와 이견을 드러내자 여러 관측이 뒤따랐다. 대표적인 게 "순조롭게 협력을 유지하던 후진타오-원자바오 사이에 균열이 생긴 것 아니냐"는 관측이다.

최근 후진타오는 이런 관측에 위험한 전망을 더 할 수 있는 발언을 했다. 왕양의 정치적 입장을 지지하는 내용이었다. 이런 관측과 전망이 맞다면 중국의 현 집단지도체제에서는 묘한 마찰음이 빚어진다고 볼 수 있다. 최근 광둥을 두고 벌인 후진타오 주석의 행보와 왕양의 정치적 위상은 이런 내용이다.

왕양 광둥성 서기의 산업 구조조정 정책이 중국 권력 정점에 있는 후진타오 주석의 인가를 받았다. 왕양 서기가 주장한 주장(珠江) 삼각주 지역 산업의 ‘등롱환조(騰籠換鳥·새장을 들어 새를 바꾼다는 말로 교체와 혁신을 내용으로 하는 산업 업그레이드)’ 정책에 중국 최고지도자가 공개적으로 지지 의사를 밝힌 것이다. 후진타오 주석은 지난 7일 전인대(전국인민대표대회) 광둥(廣東)대표단을 만나 최근 전세계적인 금융위기가 발전 방식을 전환하고 구조조정을 진행할 절호의 기회임을 강조했다. 후 주석이 “반드시 굳건한 믿음을 갖고 시간이 우리를 기다리지 않는다는 정신으로 모두 실제에서 출발하여 중앙이 결정한 정책을 철저하고 창조적으로 실행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홍콩에서 발행되는 8일자 명보(明報)가 보도했다.

명보가 중국중앙방송(CCTV)을 인용해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후진타오는 7일 광둥대표단을 만나 참석한 루루이화(盧瑞華) 전 광둥성장의 건강을 묻고, 여자 대표단에게는 3월8일 부녀절을 미리 축하했다. 황화화(黃華華) 광둥성장과 리위취안(李毓全) 둥관(東莞)시장 등 대표단 8명이 발언을 마친 후에 후진타오는 현재 상황을 ▶국제 금융 위기가 몰고 온 엄준한 도전의 시기이자 ▶발전방식 전환과 구조조정을 더욱 빠르게 할 시점이며 ▶자신의 뛰어난 점을 발휘하고 발전에 장애물을 제거하면서 ▶새로운 출발점에 서서 새롭게 우위를 차지할 기회라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는 반드시 굳건한 믿음을 갖고 시간이 우리를 기다리지 않는다는 정신으로 모두 실제에서 출발하여 창조적으로 중앙에서 결정한 정책을 철저하게 실행하라”고 말했다. 이는 위기에 대응함과 동시에 위기 이후 더욱 장기간 동안 빠르고 좋은(又好又快) 발전을 펼칠 기초를 닦으라는 의미다.

◆’등롱환조’정책 인정하고 왕양 지지 표명=왕양은 지난해 주장 삼각주 산업의 ‘등롱환조’ 정책을 제출하는 한편 기업과 노동력을 새 환경에 맞춰 혁신적으로 조정하는 정책을 선보였다. 그 뒤 기업 경영 원가가 상승하고 대량의 노동자 실업이 발생하자 홍콩 기업인들을 포함해 광둥성 산업지역에서는 각종 쟁의가 빈발했다. 원자바오 국무원 총리도 지난해 11월 광둥 지역 시찰을 내려와 중소기업을 보조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왕양의 혁신적인 개혁 드라이브에 총리가 제동을 걸고 나온 것으로 비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양은 여전히 ‘등롱환조’전략을 고수했다. 원자바오 총리와는 분명 엇박자를 계속 유지했던 셈이다. 급기야 후진타오가 7일 광둥 대표단을 만나 “발전방식 전환과 구조조정을 더욱 빨리하라”고 연설한 것은 분명히 공개적으로 주장 삼각주 산업 업그레이드 정책을 지지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왕양의 한 측근은 “오늘은 광둥 대표단 및 광둥 전성 인민이 충분히 기뻐하고 감격할 만한 하루”라며 후진타오의 연설에 감격했다고 명보는 분위기를 전했다.

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 xiao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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