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과음과 전쟁’ … 술술 잘 풀릴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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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유럽의 소문난 ‘술고래’ 국가들이 ‘과음과의 전쟁’에 돌입했다. 와인 종주국 프랑스와 스카치 위스키의 나라 스코틀랜드 등이 앞장서고 있다.

스코틀랜드 정부는 지난 1일(현지시간) 주류가격 하한제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해 ‘과음 규제’에 나섰다. 주점 등에서 술을 지나치게 싼값에 팔지 못하도록 병당 최저 판매가격을 법으로 정하겠다는 것이다. 술 한 병을 사면 덤으로 한 병을 더 주는 판촉 행사도 금지할 계획이다. 술을 살 수 있는 나이를 현재의 18세에서 21세로 올리는 권한을 각 지역 위원회에 부여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북유럽의 핀란드는 1월 주류세를 10% 올렸다. 술 소비를 줄이기 위해서다. 2004년 이후 두 번째 인상이다. 영국 BBC는 “한때 경제적인 이유로 술 세금을 낮췄던 핀란드가 U턴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프랑스 하원은 6일 정액을 내고 무제한 술을 먹을 수 있는 ‘오픈 바’를 금지하고, 술을 살 수 있는 나이도 16세 이상에서 18세 이상으로 올리기로 했다. 로이터 통신은 “이런 규제안을 포함한 포괄적인 건강 증진 법안이 11일 하원을 통과해 이달 말 상원에 상정될 예정”이라고 전했다.


맥주의 나라 독일은 이미 2007년에 ‘오픈 바’ 파티를 법으로 금지했다. 16세 소년이 데킬라를 50잔 이상 마시고 사망한 사건이 계기가 됐다. 스페인의 몇몇 도시는 최근 유서 깊은 ‘엘 보텔론(축제 때 거리에서 밤을 새우며 술을 먹는 것)’풍습을 금지하기 시작했다.

이들 국가가 앞다퉈 음주 규제에 나선 것은 자국의 술 소비가 지나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프랑스·독일·스코틀랜드의 15세 이상 국민의 한 해 1인당 알코올 소비량은 각각 13.54L, 12.89L, 11.8L를 기록하고 있다. 모두 OECD 평균(9.5L)을 훨씬 웃돈다. 알코올 11.8L를 술로 환산하면 1파인트(0.57L)짜리 잔으로 맥주 570잔, 보드카 42병, 와인 125병에 해당한다.

소비가 계속 늘어나는 추세도 문제다. OECD가 1980년부터 2005년까지 회원국의 술 소비량 변화를 조사한 결과 대부분 국가에선 감소 추세인 반면 핀란드와 영국(스코틀랜드 포함)은 각각 27%, 20% 증가했다. 폭음과 청소년 음주 증가도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유럽연합(EU)에 따르면 이 지역 15~16세 청소년들은 평균 12세6개월의 나이에 술을 시작해 14세가 되면 만취하도록 술을 마시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음은 질병과 사고, 그로 인한 사회적 비용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스코틀랜드의 경우 지난해 병원 진료비와 기업 생산성 하락 등 술로 인해 지출된 사회적 비용은 22억5000만 파운드(약 4조9000억원)에 달한 것으로 추산됐다.

그러나 음주를 식문화의 일부로 보는 전통과 세계적인 경기 침체에 따른 주류 업계의 반발로 유럽 정부들의 노력이 정착되기까지는 많은 진통이 예상되고 있다.

김한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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