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로 성공하기 어렵다? 선수 때 경험 과신 안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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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한ㆍ일월드컵의 영웅 홍명보(40)가 청소년 대표팀 감독이 됐다. 그동안 홍명보는 줄곧 대표팀 코치로 일해왔지만 감독 타이틀은 이번이 처음이다. 더구나 올림픽 감독 자리까지 보장받았다. 엘리트 코스를 착실히 걷고 있는 홍명보를 두고 “줄을 잘 서서 출세가 빠르다”, “정몽준 전회장이 아끼는 인물”이라는 질시와 비아냥이 없지 않다. 그러나 홍감독은 히딩크를 연상시킬 만큼 당당하다. 자신은 지금 한창 일해야 할 나이이며, 정몽준 회장과의 관계는 그저 남들이 하는 얘기일 뿐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는 것이 홍명보의 대답이었다.


홍명보(40·사진). 대한민국 축구팬이라면 그의 미소를 잊지 못할 것이다. 2002 한·일 월드컵 8강전에서 승부차기의 마지막 키커로 나선 홍명보가 스페인 골문을 흔든 뒤 동료들을 향해 달려갈 때 텔레비전 중계 화면을 가득 채우던 그의 미소. 당시 그는 대표팀의 주장이었다. 그리고 7년이 지난 뒤 홍명보는 20세 이하 청소년대표팀의 감독이 되어 다시 뉴스의 중심에 섰다.

축구협회는 지난달 19일 홍명보에게 오는 9월 이집트에서 열리는 청소년월드컵에 출전할 팀의 사령탑을 맡겼다. 2012 런던올림픽까지 책임져야 하는 중책이다. 올림픽에서 성적이 좋다면 2014 브라질월드컵 지휘봉마저 거머쥘 것이다. 화려해 보이지만 벅찬 자리다. 홍명보는 그동안 줄곧 코치로 일해 왔을 뿐 감독으로서는 새내기다. 파주 트레이닝센터에서 홍명보를 만난 것은 대표팀 훈련 이틀째인 3일이었다.

마흔 살 넘어, 난 어리지 않아

홍명보 감독을 바라보는 축구계의 시선은 두 종류다. 첫째는 정몽준 명예회장과 조중연 회장으로 이어지는 인맥에 밀착해 빠르게 출셋길을 걸었다는 비아냥. 둘째는 실력과 인품, 대외적인 인지도 면에서 홍명보만큼 차세대 한국 축구를 대표할 만한 인물을 찾기 어렵다는 평가다. 사실 차범근 이후 한국 축구계에는 ‘인물’이 없다. 여기서 ‘인물’이란 국제대회에서 넣은 골수와는 다른, 어떤 존재감을 말한다.

홍 감독의 발탁은 이례적이었다. 감독 경험이 없다는 점도 그렇지만 지난해 아시아선수권 4강 진출로 본선 진출권을 따낸 조동현 전 감독의 자리를 대신했기 때문이다. 상식과 관행에 비춰 볼 때 조 감독을 경질할 이유는 없었다. 게다가 축구협회는 홍 감독에게는 2012년 올림픽 감독 자리를 보장했다. 이는 파격적인 혜택으로서 홍명보가 특별 대우를 받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에 족하다.

정치적 야망이 큰 정몽준 명예회장이 국민적인 축구 스타 홍명보 감독을 소중한 정치적 자산으로 생각하며 아낀다는 말도 나돈다. 사실 홍 감독은 협회의 배려(또는 신임) 덕에 줄곧 대표팀 코치를 맡아 왔고, 덕분에 경쟁 없이 대표팀 코치 경력을 쌓았다. 이 부담스러운 시각에 대해 질문을 받은 홍 감독은 특유의 ‘포커 페이스’로 차분히 자신의 입장을 설명했다.

경험 부족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한다”고 운을 떼었다. 그러나 홍 감독은 “선수 때 이미지가 워낙 강해 나를 어리게 생각하지만 벌써 마흔 살이 넘었다. 축구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할 나이다. 선수 시절엔 중심적인 역할을 하며 팀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찰할 수 있었다. 또 코치 때 쌓았던 경험을 믿고 싶다”고 말했다.

난 정몽준과는 관계없는 사람

런던올림픽까지 약속된 것에 대해서는 “청소년대표팀 감독 제의만 왔다면 아예 팀을 맡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정면 돌파했다. 그는 “선수를 키워 가며 올림픽까지 책임진다는 비전이 있어서 시작한 일”이라며 “지난겨울 J-리그와 K-리그 몇몇 팀에서 감독 제의가 있었다. 갈 곳이 없어서 맡은 게 아니다”고 덧붙였다.

그는 “청소년월드컵에서의 성적도 중요하다. 하지만 2012년을 바라보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팀을 운영하겠다”고 못 박았다. 청소년월드컵 성적에는 연연하지 않겠으며, 더 급한 일은 지금 월드컵 팀의 대들보로 성장한 기성용·이청용처럼 재능이 풍부한 어린 선수를 발굴하고 키워 내는 일이라는 주장이다.

조동현 전 감독에 대해서는 미안한 감정이 없지 않았다. 홍 감독은 “결과적으로 모양새가 그렇게 돼 죄송한 마음이 있다. 기분이 안 좋을 수도 있는데 오늘 점심식사 시간에 조동현 감독이 직접 오셔서 선수들에게 열심히 하라고 당부해 주셨다. 나에게 선수들에 대한 정보도 주셨다”며 감사를 표했다. 조동현 전 감독은 이날 방문에 대해 “애들을 생각해서라도 마무리는 잘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껄껄 웃었다.

정몽준 명예회장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그저 주위에서 하는 말이다. 그런 일에 신경 쓰기보다는 내가 어떤 사람이 되느냐가 중요하다”고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홍 감독으로서는 최선의 대답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홍 감독이 쌓아 올리는 업적과 처신의 결과에 따라 달라질 문제다.

기성용·이청용 같은 선수 발굴할 터

홍명보 감독에게도 분명 닮고 싶은 누군가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홍 감독은 “롤 모델은 없다. 누구를 따라 하기보다 도전도 하고 실패도 하면서 스스로 시험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아류가 되지 않겠다는 당찬 포부이기도 하지만 홍명보 감독 특유의 복잡한 화법이기도 하다. 그는 생각을 분명히 표현하는 편이지만 속마음을 쉽게 알기 어려운 면도 있다.

홍 감독은 2005년 9월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 대표팀을 맡을 때 코치로 발탁됐다. 2006 독일월드컵이 끝난 다음에는 핌 베어벡 감독과 박성화 감독을 보필했다. 홍 감독은 전임 감독에 대해 나름대로 평가했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아침에 선수들 눈이 충혈된 것까지 신경 쓰는 세심한 면이 있었다. 베어벡 감독은 족집게 강사처럼 완벽한 훈련 프로그램을 짜는 능력이 탁월했다. 나는 계속 외국인 감독과 생활해 사고가 치우칠 수도 있었는데 박성화 감독을 모시면서 균형을 잡을 수 있었다.”

그는 “처음 코치를 맡았을 때 나는 선수들 맏형 노릇만 잘하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날 코칭스태프 회의 때 아드보카트 감독이 ‘왜 넌 말을 안 하느냐’고 질책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2006년 월드컵을 앞두고 아드보카트 감독과 베어벡 코치는 다시는 안 볼 것처럼 싸웠다. 그런 과정을 통해 전술과 전략을 만들어 나갔다. 나도 의견을 내 처음 반영됐을 때는 너무 기뻐 눈물이 날 뻔했다”는 기억을 더듬었다.

홍명보 사단에서는 2002년 월드컵에서 함께 뛴 김태영 코치가 수비 부문을, 지도자 자격증을 취득한 뒤 코치로 기용될 예정인 서정원 기술분석관이 공격 부문을 맡는다. 홍 감독은 “코치들에게 실수는 해도 상관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내가 실수하는 것을 그냥 넘어가지는 말라고 당부했다. 내가 듣기 좋은 말만 골라 하는 코치는 필요 없다”고 말했다. 그는 “난 J-리그와 미국 프로축구 등 해외 리그 경험이 10년이 넘는다.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자세가 돼 있다”고 다짐했다.

2012년 런던올림픽도 보장받아

홍 감독이 자신의 업적과 능력에 대해 갖는 긍지는 대단하다. 그는 “스타가 지도자로는 성공하기 어렵다는 속설이 있다. 선수 때 경험을 과신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난 선수들 앞에서 절대 시범을 보이지 않는다. 그들이 홍명보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역효과를 우려해 선수들과 눈높이를 맞추겠다는 것이지만 여기에도 ‘내가 한 것과 같은 플레이를 아무나 할 수 없다’는 자부심은 깔려 있다.

홍 감독에게 선수 생활은 축구 인생의 1막이었다. 지도자 생활은 2막이다. 그렇다면 3막은? ‘독일 축구의 황제’ 베켄바워를 꿈꾸는지도 모른다. 베켄바워는 1974 서독월드컵에서 선수로,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감독으로 우승을 맛봤다. 2006 독일월드컵 때는 조직위원장을 맡아 대회를 잘 치렀다. 선수·지도자·행정가로 모두 성공한 것이다.

홍 감독이 베켄바워를 꿈꾸는 것과 실제로 그렇게 되는 것은 별개다.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는 에스컬레이터를 탄 것처럼 쉽게 성공 가도를 달려왔지만 이제 진짜 승부가 기다리고 있다. 청소년 월드컵에서 실패할 경우 부담이 작지 않을 것이고, 내년에 시작되는 2012 런던올림픽 아시아 예선에서는 그야말로 피 말리는 경쟁을 해야 한다.

그는 “중2부터 고2 때까지 키가 작았고 이때가 선수로서 가장 힘들었다. 하지만 고3 때 키가 10㎝ 정도 자랐고, 키가 작을 때 익힌 기술이 몸에 배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시련이 그를 키웠다는 이야기다. 가슴 훈훈한 스토리지만 이 속엔 반전이 숨어 있다. 홍명보는 선수 시절과 달리 지도자로는 큰 시련을 겪지 않고 컸다. 그는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자신감만은 대단하다.

이해준 기자


기자가 본 홍명보 감독
홍명보 감독을 인터뷰하면서 줄곧 거스 히딩크 감독을 떠올렸다. 2001년이었다. 당시만 해도 졌다 하면 0-5라서 ‘오대영’이라는 별명을 면치 못했다. 히딩크는 월드컵 개막을 6개월 앞두고 “겨울에는 한국에서 할 일이 없다”며 유럽으로 휴가를 떠났다. 2002년 초 미국 골드컵 때는 애인을 숙소까지 동반해 협회와 갈등을 빚었다. 그때 히딩크 감독은 비상식적이고 뻔뻔한 사람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는 기대를 뛰어넘는 결과로 자신의 특별함을 증명했다.

홍 감독은 편치 않은 자리에 앉았다. 파격적인 감독 발탁, 쏟아지는 질시…. 그러나 홍 감독은 당당하다. 흔들림 없는 신념은 ‘독불장군’ 히딩크의 재판 같다. 축구계에는 이런 말이 있다. ‘미치지 않고서야 누가 축구 감독이 되겠는가’. 맨유의 알렉스 퍼거슨, 인터 밀란의 무리뉴 등 세계적 명장들은 모두 상식과는 거리가 먼 괴팍한 신사들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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