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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정 기자의 클래식 상담실] Q ‘악기맹’도 연주를?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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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호 11면

아이디 ‘hookct’를 쓰시는 분이 질문을 보내셨네요. 좋아하는 지휘자와 작곡가 이야기로 시작하는 e-메일에서 음악 듣기의 내공이 엿보였죠. 이제 질문이 시작됩니다. “아들 놈이 피아노 치는 것을 보니 악보 읽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만은 않던데요.” 이제 듣기를 넘어 적극적 참여를 하고 싶다는 뜻이네요. “저도 이론을 공부하면 될까요?”

어쩌면 대부분의 음악 감상자가 가진 꿈 끝에는 연주가 있는 듯합니다.
길버트 카플란(68)을 아시나요? 24세 때 ‘인스티튜셔널 인베스터’라는 투자 전문지를 창간해 100여 개국에서 찍어냈던 갑부 금융인이죠. 그런데 그는 젊은 시절 들었던 음악 하나를 잊지 못했습니다. 19세기 말~20세기 초 작곡가인 말러의 교향곡 2번인데요, 거대한 음향으로 새 시대를 알렸던 작품입니다.

카플란은 이 한 곡을 평생의 목표로 삼았습니다. 악보 읽는 법부터 화성법ㆍ지휘법 등 음악 이론까지 가정교사를 둬 공부했죠.
그는 마흔 살 넘어 카네기홀에서 데뷔를 합니다. 출연료를 받기는커녕 자신의 돈을 내고, 아는 사람들을 객석에 앉힌 후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것이죠. 그런데 이렇게 시작한 일이 생각보다 커졌습니다. 객석과 평단의 호응 끝에 전 세계 50개 넘는 오케스트라와 말러 2번을 연주했습니다.

카플란은 아직도 말러 2번을 지휘한답니다. 이젠 웬만한 프로 지휘자보다 한 수 위죠. 공식 말러 협회에서 2번 악보의 개정을 같이하고, 재단도 세워 이 작품에 대한 자료를 모아 놨습니다. 지난해 12월 말러의 미국 데뷔 100주년 기념 콘서트를 연 뉴욕 필하모닉이 고른 지휘자도 카플란이었습니다.

베토벤은 연주를 꿈꾸는 아마추어에게 호의적이었습니다. 현악4중주 7번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라주모프스키 러시아 대사, ‘대공’ 트리오(Op.97)는 루돌프 대공(피아노)을 위해 작곡했죠. 자신의 이름이 붙은 작품을 연습한 뒤 초연하는 귀족들의 기분이 그럴듯했겠죠?

사실 이렇게 돈을 내고 공연장을 대관하거나 작곡가에게 작품을 쓰게 하기란 쉽지 않죠. 대신 스치듯 듣다 ‘꽂힌’ 곡이 있다면, 그 곡의 연주를 목표로 삼아 악기를 시작하는 건 어떨까요. 평생에 걸쳐 한 곡쯤 완벽하게 소화하는 ‘아티스트’가 되는 것, 멋지지 않나요? ‘체르니 100번 다음에 30번, 40번’ 하는 식으로 틀에 박힌 악기 공부를 하던 시대는 이제 지나갔습니다.

동영상 사이트인 유튜브가 20개 나라에서 추려 지난 3일 발표한 ‘네티즌 오케스트라’ 90명의 명단을 보세요. 경력ㆍ나이ㆍ국적 등 어떤 제한도 없는 동영상 오디션을 거친 이들입니다. 한국의 KAIST 2학년생 김대식(20)씨를 비롯해 다양한 경력의 사람들이 뽑혔습니다. 세계적 명성을 얻은 지휘자 마이클 틸슨 토머스와 함께 4월 카네기홀 무대에 오를 90명 중에서 ‘제2, 제3의 카플란’은 몇 명이나 나올까요.

A 작품 하나에 집중해 보세요


중앙일보 문화부의 클래식·국악 담당 기자. 사흘에 한 번꼴로 공연장을 다니며, 클래식 음악에 대한 모든 질문이 무식하거나 창피하지 않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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