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떼 '이상번식' 비상…생태계 파괴로 천적인 새·개구리 사라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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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초가을 산야에 야생 벌떼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왕벌.말벌.땅벌.나나니벌등 꿀은 치지 않고 독성만 강한 야생벌떼들이 산야에 인적이 뜸해지고 천적들이 사라진 틈을 타 이상 번식, 생태계의 균형이 깨져 한 종 (種) 이 한꺼번에 급증하는 생물학적 '대 (大) 발생' 현상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말벌 (일명 대추벌) 떼들은 양봉농가의 벌통을 덮쳐 꿀벌을 떼죽음시키는가 하면 벌에 쏘여 숨진 사람도 나오고, 야생벌을 잡기 위해 불을 질렀다 산불을 내기도 한다.

농민들도 벌이 무서워 산에 가기를 꺼리고 묘에 벌집이 생겨 성묘를 못할 정도다.

경남고성군영오면성곡리에서 양봉을 하는 백영길 (57) 씨는 "보름전쯤부터 말벌떼가 꿀벌들을 습격해 죽이는 바람에 지금까지 벌 5통 (1통 2만여마리) 을 잃었다" 고 말했다.

白씨는 "말벌은 꿀벌을 물어 죽인뒤 몸체의 액을 빨아 먹기 때문에 말벌떼가 덮치면 순식간에 벌통 서너개가 피해를 본다" 며 "하루 종일 벌통 앞에서 지켜 서있기도 하지만 잠깐 자리를 비우기라도 하면 금세 벌떼가 달려든다" 고 말했다.

양봉협회 진주지부 朴찬길 (50) 회장은 "양봉농가마다 벌떼와 전쟁을 치르고 있다" 며 "벌통 앞에 그물망을 치거나 말벌 포살기 (捕殺器) 등을 설치해야 피해를 막을 수 있다" 고 말했다.

하성태 (45.상업.경북경산시압량면) 씨는 지난 7일 오전 영천시고경면 야산의 선친 묘소에 벌초를 하러 갔다가 새까맣게 달려드는 말벌떼에 놀라 도망쳐 내려왔다.

말벌떼가 묘소 봉분에 지름 20㎝크기의 구멍을 뚫고 집을 지은뒤 쉴새없이 드나들면서 사람들의 접근을 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河씨는 추석 성묘도 선친 산소에서 1백m 떨어진 곳에서 망배로 대신했다.

16일 경북청송군청송읍월막리에 성묘하러 갔던 신철 (43.공무원.경기도안양시) 씨도 할아버지 묘소 상석아래 지름 10㎝의 구덩이속에 말벌이 집을 짓고 있어 성묘를 못했다.

19일 낮12시30분쯤 전남해남군송지면군곡리 현안마을 뒷산에서 불이 나 임야 7.5㏊가 탔다.

성묘하러간 정석종 (53.해남군북평면남창리) 씨등 주민 3명이 벌집을 제거하기 위해 불을 놓았다가 산으로 옮겨 붙었다.

지난달 25일 오전7시쯤 충남홍성군광천읍담산리 야산에서 벌초작업을 하던 이세천 (41.경기도부천시) 씨가 벌떼에 머리등을 쏘여 숨졌고 지난달 23일에는 홍성군구항면 야산에서 벌초작업을 하던 金모 (22) 씨가 말벌에 쏘여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회복되기도 했다.

영남대 이종욱 (李鍾郁.생물학과) 교수는 "곤충이 한꺼번에 크게 늘어나는 것을 '대발생' 이라고 한다" 며 "요즘 벌떼들이 이 경우에 해당되는 것같다" 고 말했다.

李교수는 "환경 파괴로 벌을 잡아 먹는 새들이나 토종개구리 같은 천적이 줄어든데다 숲이 우거지면서 사람들이 다니지 않아 간섭이 없어지는등 생태계가 변해 대발생 현상이 일어난다" 고 말했다.

대구.창원 = 허상천.김선왕.홍권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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