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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정진홍의 소프트 파워

아름다운 손이 값진 삶을 빚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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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 하지만 그곳에서 마주한 손들 중 가장 인상 깊은 것은 굵고 거친 주름을 지닌 마더 테레사의 손이었다. 그 손은 이렇게 말했다. “선한 일을 하면 이기적인 동기에서 하는 거라고 비난받을 것이다. 그래도 선한 일을 하라. 정직하고 솔직하면 상처받을 것이다. 그래도 정직하고 솔직해라. 여러 해 동안 만든 것이 하룻밤에 무너질지 모른다. 그래도 만들라. 도움이 필요해 도와주면 되레 공격할지 모른다. 그래도 도와줘라. 좋은 것을 주면 발길로 차일 것이다. 그래도 가장 좋은 것을 주라.”

# 서울 송파구 거여동의 ‘개미마을’은 가난하지만 따뜻한 곳이다. 1960년대부터 서울 도심의 철거민들이 흘러 들어와 토박이들과 어우러져 만든 동네다. 최초의 이주민들은 대부분 또 다른 곳으로 흘러갔지만 여전히 가난한 노인들이 많이 산다. 이곳에 2003년부터 매주 월요일이면 찾아와 늙고 병든 이들을 돌보는 손이 있다. 주정빈 박사의 손이다. 지금까지 5000여 명의 환자들을 무료로 돌봤다. 그 역시 87세의 고령이다. 게다가 3년 전 왕진 길에 빙판에서 넘어져 왼쪽 팔을 다친 후 더는 진료 보기가 힘든 처지다. 하지만 그는 지금도 어김없이 매주 월요일이면 개미마을을 찾아 환자들을 돌본다. 주 박사의 손이야말로 늙고 병든 가난한 이들에겐 생명의 동아줄인 셈이다.

# 미국 아이비리그의 다트머스대학 총장이 된 김용 박사는 하버드에서 의학과 인류학으로 두 개의 박사학위를 취득한 뛰어난 머리의 소유자다. 하지만 그는 머리보다 손이 더 아름다운 사람이다. 그는 하버드 의대 재학시절인 87년 동료 폴 파머와 함께 의료구호 단체인 ‘파트너스 인 헬스(PIH)’를 공동 설립해 미국과 남미 등지의 빈민가에서 의료지원 활동을 시작했다. 90년대 중반엔 페루에서 약품 내성이 있는 결핵 퇴치를 위한 대대적인 활동을 벌였고 2004년부터는 세계보건기구(WHO) 에이즈국장으로 일하면서 에이즈 퇴치 프로그램을 확대해 전 세계적으로 에이즈 치료자를 30만 명에서 150만 명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그가 아이비리그에서 아시아계 최초로 대학총장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열정 어린 봉사와 헌신의 손’이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 말년의 오드리 헵번이 아들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다. “나이가 들면 새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너의 손이 두 개인 까닭을. 한 손은 너 자신을 스스로 돕는 손이고 다른 한 손은 타인을 위한 손이라는 것을.” 우리는 머리 쓰는 것만 가르친다. 여간해선 손을 아름답게 쓰는 것은 가르치지 않는다. 물론 그것은 가르쳐서 될 일도 아니다. 부모, 선배, 윗사람이 먼저 솔선수범해야 보면서 느끼고 체득하는 것이다. 점점 분명해지는 것은 머리 쓰는 사람이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손을 아름답게 쓰는 사람이 진짜 값지게 성공한다는 사실이다.

정진홍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