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상 감독 5천남원짜리 영화 '김수영 - Sex' 제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1면

'단돈' 5천만원으로 장편 상업영화를 만든다.

독립영화운동을 해온 젊은 영화인들이 뭉쳐 "한국영화 제작비의 거품을 빼겠다" 고 나섰다.

지난해 단편 '탈 - 순정시대' 를 연출했던 이지상감독 (41) 과 94년 '오르그 (Org)' , 96년 '오버미 (Over Me)' 등의 실험영화가 국내외 영화제에 상영돼 눈길을 모았던 촬영감독 임창재 (33) , 문화학교 서울을 통해 시네마테크운동을 주도하면서 독립영화작가그룹전인 인디포럼을 기획해온 프로듀서 조영각 (28) , 김응수감독의 장편 독립영화 '시간은 오래 지속된다' 의 주연을 맡았던 배우 김중기 (31) , 그리고 신인여배우 서정 (25).장미루 (21)가 그 주인공 들이다.

곧 촬영에 들어갈 작품의 제목은 '김수영 - Sex' .하지만 영화에는 시인 김수영도, 김수영 시의 한 구절도 등장하지 않는다.

대학시절 김수영 문학에 빠져 살았다는 이지상 감독은 "이번 영화는 김수영 시인에게 바치는 헌사" 라고 선언한다.

하지만 "김수영의 생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가 지닌 신비로운 분위기 (아우라) 를 채용하고자 했다" 면서 "김수영을 감싸고 있는 죽음의 냄새, 냉소와 조롱의 분위기가 바로 영화의 분위기가 될 것" 이라고 설명했다.

1부 '서른 - 현대의 순교' 와 2부 '열아홉 - 해탈' 두가지 이야기로 이루어지는 옴니버스영화인 '김수영 - Sex' 는 우연히 만나 죽음을 함께 하는 두 쌍의 남녀이야기. 거리에서 우연히 마주 친 각각의 남녀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인 '몸뚱아리' 를 서로 나눌 뿐이다.

'김수영 - Sex' 가 특별히 눈길을 모으는 이유는 영화시장 규모를 벗어난 지나친 제작비 책정으로 위기에 봉착한 한국영화계에 새로운 제작방식을 수립해 보이겠다는 제작진의 도전의식이 '도발적' 이기 때문이다.

요즘 웬만한 한국영화의 평균제작비는 15억원선. 이는 60만명의 관객을 동원해야 겨우 수지가 맞춰지는 액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한국영화가 잘해야 관객 30만명을 넘기 힘든 형편. 적자가 쌓이다보니 제작편수도 계속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평균제작비의 30분의 1인 5천만원으로 만드는 '김수영 - Sex' 는 스탭과 배우 전원이 개런티를 흥행수익에 따라 후불제로 받게 되며 예산절감을 위해 필름도 16㎜로 찍어 35㎜로 확대할 예정이다.

김수영과 섹스를 연결시킨 것은 "우주 전체가 섹스로 뒤범벅된 이 세상을 섹스로써 한번 조롱하고 비판해보고 싶었기 때문" 이라고 한다.

'이이제이 (以夷制夷)' 라는 것이다.

"한국영화들이 흥행을 위해 필요하지도 않는 섹스장면을 넣는 경우가 많다" 는 그는 "시나리오를 들고 제작자를 찾아나섰지만 액션과 코미디 아니면 도저히 데뷔가 불가능함을 실감했다.

그래서 아예 뜻있는 친구들과 합심, 독립영화제작방식으로 상업영화를 만들어보기로 한 것" 이라고 밝혔다.

이남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