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를잡아라]음료·빙과업체 비수기대비 품목 다양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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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빙과업체 A사. 아침 저녁으로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생산라인 정비및 인력 재배치로 분주하다.

우선 약 3백명의 빙과라인 직원중 절반인 1백50명은 라면공장 라인으로, 70여명은 초콜릿제품 쪽으로 돌릴 예정이다.

올 여름 무더위 덕에 빙과.아이스크림이 많이 팔려 재미를 봤지만, 이제는 빙과 생산을 줄이고 대신 주문이 늘어날 초콜릿.라면을 많이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몇년 전만 해도 여름 성수기가 지나면 생산라인과 인력을 놀려야돼 속을 태웠는데 생산품목을 다양화한 뒤 요즘은 4계절 전천후라 훨씬 효과적이다.

'노는 시설과 인력을 최소화하라. ' 불황 속에서 생산.인력의 효율적 관리가 최대 과제로 부각되면서 특히 계절 상품을 많이 취급하는 음료.식품.제과.빙과업계들이 갖가지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다.

가장 많이 동원되는 전략은 계절에 따라 생산품목을 바꾸는 것. 크라운제과는 지난7월 오브리치란 브랜드로 아이스크림 시장에 진출했다.

반대로 빙그레는 빙과 라인을 활용, 지난해 말부터 초코지오란 초코파이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여름 상품인 빙과제품과 겨울철에 많이 팔리는 초콜릿은 생산설비와 원료가 비슷하면서 성수기가 정반대라는 점에서 대표적인 호환성을 갖는다.

때문에 크라운은 초콜릿 생산시설을 이용해 아이스크림 시장에 뛰어들었고, 빙그레는 반대의 경우다.

빙그레의 경우 초코지오 매상이 벌써 45억원에 이르는 등 계절교환생산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빙그레 이해선상무는 "종전에는 여름에 생산.판매인력이 달려도 겨울철 비수기가 걱정이 돼 아르바이트 인력을 활용했는데 이제는 직원들을 4계절 내내 골고루 활용할 수 있게 됐다" 면서 "비용절감 측면까지 감안하면 약 30~40%의 생산성 증대효과가 기대된다" 고 말했다.

해태음료.롯데칠성.웅진식품등 주요 음료회사들이 겨울에 따뜻하게 즐길 수 있는 대추음료.옥수수스프를 비롯해 냉동만두.냉동피자등을 잇따라 내놓은 것도 생산.판매설비 및 인력 활용 차원으로 풀이된다.

해태음료의 경우 히트상품인 '갈아만든 배' 가 상대적으로 여름에는 덜 팔리자 계열사인 해태제과로 하여금 같은 이름의 빙과 (갈아만든 배 바) 를 생산토록 해 잔뜩 확보해 놓은 배를 소화하면서 올 여름 상당한 재미를 봤다.

이런 과정에서 경쟁사 제품을 대신 만들어 주는 '적과의 동침 (同寢)' 현상도 종종 벌어진다.

올 여름 롯데제과는 시설이 달려 주문에 대지 못하자 빙과제품 '싱그런배' 는 삼양식품에, '팥만치' 는 삼립GF에 각각 위탁 생산했다.

삼립GF는 빙그레 부탁으로 아이스바를 만들어 공급하기도 했다.

롯데 입장에서는 설비를 늘릴 필요없이 반짝 수요를 맞출 수 있고, 삼립이나 삼양은 설비를 놀리는 것보다는 경쟁사 제품이라도 대신 생산해주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다른 업종의 회사와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계절별 한계를 보완하는 방법도 있다.

올 여름 보일러업체 린나이코리아가 두원냉기의 에어컨 1천5백대를, 롯데기공이 대우캐리어 에어컨 2천대를 대신 판매해준 것이 대표적 사례. 보일러메이커는 여름철에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인력과 판매망을 활용해 돈을 벌고,에어컨업체는 별도로 판매망.인력 충원없이 물건을 팔고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 서로 이익인 것이다.

특히 에어컨과 보일러는 설치.보수인력의 공동활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들은 아예 겨울에는 에어컨 대리점이 보일러제품의 애프터서비스를 해주는 방안도 검토중이다.

업계 전문가는 "미국.일본등의 계절상품 메이커는 생산라인을 간단히 바꿈으로써 해당 계절상품을 한곳에서 생산할 수 있는 교체형 (컨버터블) 라인을 많이 확보하고 있다" 면서 "국내 업계로 이런 방향으로 나가야 할 것" 이라고 말했다.

이효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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