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안보리 개편과 우리 국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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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유엔에서는 지금 안전보장이사회 개편을 위한 헌장 개정안이 논의되고 있다.

안보리 개편문제는 중장기적 국가이익이라는 차원에서 볼 때 우리에게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며 특히 장차 통일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생각할 때 더욱 그러하다.

16일 개막된 제52차 유엔총회에서 특히 이 문제에 많은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는 지난 4년간의 유엔 회원국간 논의를 바탕으로 이제는 결론을 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국가들이 상당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가장 많이 거론되고 있는 개편안은 일본과 독일에 더해 개발도상국에도 상임이사국 세자리를 주어 총 다섯개의 상임이사국을 증설하고 비상임이사국은 네자리를 증설함으로써 전체 이사국 수를 15개국에서 24개국으로 확대한다는 내용이다. 일명 라잘리 (전임 총회의장) 안이라고 불리는 이 안에 대해 일본.독일.인도.브라질.나이지리아등 새로운 상임이사국 자리를 노리는 국가들은 물론 미국도 기본적으로는 호의적이다.

미국이 금년들어 안보리 개편을 서두르고 있는 이유는 자국의 대 (對) 유엔 재정부담을 덜어보려는 의도와도 관계가 적지 않다.

사실 미국의 재정부담 경감은 독일과 일본의 추가적인 재정적 부담 없이는 해결이 어렵고 독일.일본은 안보리 상임이사국 지위 획득 없는 재정협력을 거부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은 지금까지 거부권을 갖는 상임이사국 증설에는 명백히 반대하면서 비상임이사국 증대에만 찬성해 왔으나 거부권 없는 상임이사국 증설안에는 보다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취해 왔다.

현재 추진되고 있는 라잘리안은 거부권 문제는 일단 접어두고 상임이사국의 증설을 주내용으로 한 결의안 형식을 취하고 있다.

만약 이 결의안이 이번 총회에 상정돼 통과된다면 내년 중반까지는 새로운 상임이사국을 선출토록 예정돼 있어 이제 우리의 입장을 보다 구체화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캐나다.이탈리아.한국등 상당수 중견국가들이 이 안에 강력히 반대하는 이유는 첫째 안보리 비상임보다 상임이사국 증설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유엔의 민주화에 기여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둘째 상임이사국이 현재의 미국.영국.프랑스.중국.러시아에 더해 총 10개국으로 불어나게 되면 무엇보다 한국등 유엔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는 중견국가군을 소외시킴으로써 이들의 대유엔 기여 의욕을 크게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

일본의 일부 언론에서는 한국의 상임이사국 증설 반대가 일본을 염두에 둔 것처럼 취급하기도 한다.

일본은 서방선진7개국 (G7)에서 한국을 대변하는 경우도 있고 또 만일 상임이사국이 될 경우 안보리에서도 한국을 대변해 줄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한.일 양자차원에서의 손익문제가 아니고 국제기구에서의 민주화 원칙의 문제다.

사실 적지 않은 수의 유엔 회원국들은 힘의 정치 (real politics) 의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민주주의가 보편화되고 있는 세계적 시대조류 속에서 유독 유엔은 왜 특정국가군에 영구히 특권적 지위를 부여하는 식의 '개혁' 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새로운 상임이사국에 거부권이 부여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영구히 이사국 지위를 향유하는 국가가 증가하는 것은 다른 회원국들, 특히 중견국가들에는 중대한 기회 상실이 될 수밖에 없다.

만약 이번 총회에서 거부권 부여를 전제로 하는 상임이사국 5석 증설안이 제출될 경우 우리의 반대는 명백할 것이나, 거부권 없는 상임이사국 증설안은 우리에게 상당한 외교적 부담이 될 수 있다.

후자의 경우 우리의 대유엔관, 다자무대에서의 향후 입지및 일본.독일과의 쌍무관계, 동북아의 역학관계등이 중장기적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검토된 후 우리의 세부적 입장이 결정돼야 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야말로 국민적 이해와 지지 속에서 국익을 최대한 반영할 수 있도록 정부와 민간차원에서의 활발한 의견 교환과 협력이 필요한 사안이다.

박수길 駐유엔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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