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공 한달째 북한 경수로 현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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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컴퓨터를 왜 한명씩 갖고 있습니까. " "점심식사를 왜 식당에서 하지 않고 시켜먹습니까. " 19일로 북한 금호지구에서 대북 (對北) 경수로 건설공사가 착공된지 한달째가 된다.

그동안 이곳에선 뚜렷하게 잡히지는 않지만 북한 근로자들이 보이는 '변화의 감촉' 을 느낄 수 있다는게 우리측 근로자들을 비롯한 당국자들의 전언이다.

현재 이곳에서 일하는 근로자는 남측 90여명, 북측 30여명등 모두 1백20여명선. 소식통은 "북한 근로자들은 우리측에서 파견한 근로자들이 쉬지 않고 일하는 것을 보고 상당히 충격을 받은 것같다" 고 말했다.

체력이나 근무강도에서 북한 근로자들은 도저히 우리 근로자들을 따라오지 못해 "어떻게 그렇게 일할 수 있느냐" 고 묻는다는 것. 지금까지 북측 근로자들만이 단독으로 맡아 하는 작업은 없고, 모두 남북 합동으로 일하고 있다.

남측 근로자가 운전하는 트럭에 북측 근로자가 조수로 탑승하는가 하면 컨테이너를 내릴 때 북측 근로자들이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한전측이 현재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작업은 부지내 식당과 숙소를 모두 컨테이너로 만드는 것이다.

컨테이너 11개를 연결한 후 가운데를 트는 방식으로 만드는 식당은 이달말 완공될 예정이다.

이런 작업들을 함께 하면서 남북 근로자들은 스펀지에 물이 스며들듯 융화해 가고 있다고 한다.

이곳을 방문한 적이 있는 한 당국자는 "처음엔 우리측 근로자들이 주는 담배도 거부하는등 극도로 움츠린 태도를 보였던 북측 근로자들이 점차 여유를 찾아가고 있다" 고 말했다.

남북 근로자들은 트럭 안에서, 혹은 휴식시간등을 이용해 가족관계에서부터 남북의 생활상에 이르기까지 대화의 폭을 점차 넓혀가고 있다.

대화내용중 상당부분은 북측 근로자들이 놀라워하는 대목임은 물론이다.

남측 한 근로자에게 월급이 얼마냐고 물었다가 "5천달러 정도" 라는 대답을 들은 한 북측 근로자는 "정말이냐" 고 몇번 되물었다고 한다.

북측 근로자의 월급인 1백10달러도 북한에선 한 가정이 6개월 정도 먹고 살 수 있는 금액이다.

많은 북측 근로자들은 컴퓨터등 초정밀기기들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한다.

이곳에 파견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 (KEDO) 직원들이 한사람당 노트북 컴퓨터를 한대씩 갖고 있는 것을 보고 "컴퓨터란 중앙기관에서 사용되는 커다란 것이 아니냐" 고 묻는 근로자들이 한두명이 아니라는 것. 3천여개 유류 드럼통이 쌓인 야적장도 북한 근로자들의 눈길이 자주 가는 장면이라고 한 관계자는 귀띔했다.

그는 "부지내 식당이 완공되면 위성TV 시청이 가능해져 잘하면 남북 근로자들이 28일 일본과의 축구시합을 볼 수 있을 것" 이라며 "경수로 사업이 북한사회에 미칠 파장은 상당할 것" 이라고 말했다.

안희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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