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다큐멘터리 '히말라야고원의 망향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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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아버지, 이제 한을 푸세요. 내가 이분들께 빌고 또 빌어 아버지를 한국에 모시겠습니다. "

지난 5월초 티베트의 수도 라싸. 세상을 떠난 아버지가 눈 앞에라도 있는 듯 박숙분 (38.여) 씨는 눈물을 흘리며 티베트어로 말했다.

그의 곁에서는 SBS 다큐멘터리 '히말라야 고원의 망향가' 제작진이 함께 눈물을 글썽였다.

박씨의 아버지 박준의 노인. 90년 가까이 이국땅을 헤매다 지난해 2월 93세로 티베트에서 숨을 거둔 한많은 한국인이다.

뼛가루로나마 고향에 돌아가는 것이 생전의 소원이었던 그의 가슴저린 사연이 추석인 16일 오전9시5분 전파를 탄다.

"내가 죽으면 화장을 해서 고국에 묻어다오. 아니면 뼈를 이곳 라싸강에 뿌려다오. 그 강물이 인도양으로 흘러 들고 언젠가는 고국의 바닷물과 합쳐질 테니…."

그의 이 비원은 그대로 티베트 여인과의 사이에 얻은 다섯 남매의 한이 되었고, 그 자식들은 언젠가 고국땅에 모시겠다며 그의 뼈를 고이 간직하고 있다.

박노인은 1906년 세살 되던 해 부모와 함께 조국을 떠나 만주로 갔다.

몇해 뒤 아버지는 우물에 빠져 목숨을 잃었고 어머니도 늑대에 물려 세상을 떠났다.

고향에 돌아와 몇년을 보내고 열다섯살 때 다시 만주의 한 집안에 양자로 들어갔다.

그리고 영영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는 청년 시절 독립군에 들어가 일본군에 쫓기며 중년을 보냈다고 한다.

백두산에서 러시아, 몽골을 거쳐 신장 (新彊) 으로 들어 가는 유랑생활 10여년. 54년 티베트에 도착해서야 떠돌이 삶은 끝났다.

그의 나이 쉰하나였다.

숯을 구워 생계를 잇던 그는 서른살 연하의 티베트 여인과 결혼해 5남매를 낳았다.

그들에겐 숙분.화 (34).준 (29).생 (26).춘 (21) 이라는 한국 이름이 붙었다.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박노인은 북한영화가 들어오면 아이들 손을 잡고 구경을 갔다.

숙분씨는 "저게 바로 한국사람들이다. " 라고 말하며 아버지가 울었다고 전한다.

당시엔 북한영화가 같은 사회주의국가인 중국과 문화교류 차원에서 가끔 들어왔다고 한다.

그러다 문화혁명이 대륙을 휩쓸던 67년. 유달리 한국을 찾던 박노인은 북한을 비판한 말때문에 간첩으로 몰렸다.

배급도 끊겼다.

64세의 그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채석장에서 젊은이도 견디기 힘든 노동을 해야 했다.

그런 생활은 그 뒤 10년동안 계속됐다.

77년 누명이 벗겨지고 라싸에서 담배장사를 하는 자식들과 함께 살게 됐다.

여전히 가난했지만 70여년동안 그를 괴롭힌 시련은 더 이상 없었다.

그렇게 오랜 세월 시달렸어도 박노인은 언제나 따뜻한 인정을 잃지 않았다.

"한번은 거지에게 커다란 밀빵을 몇개 주는 것을 보았습니다.

자신들도 제대로 못 먹으면서 무슨 짓이냐고 물었더니 좀 덜 먹으면 어떻고 안 먹으면 또 어떠냐며 웃더군요. " 그와 40년을 사귄 중국인 류롄성 (劉蓮生.70) 노인의 말이다.

권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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