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사회서 전통과 고향의 의미…나와 우리를 확인하는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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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분명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

고속도로는 대형 주차장으로 변하고 남자들은 도로변에 쭈그려 앉아 담배를 뻐끔댈 것이다.

그리곤 이런 중얼거림 - "추석이란 것을 누가 만들었길래 매번 이렇게 고생시키냐. " 이젠 이력도 날만큼 났건만. 하지만 그건 속된 말로 '즐거운 비명' 이다.

정말 싫다면 누구처럼 염치불고하고 동남아로 뜨거나 '역귀성' 이라도 추진했을 것이다.

어차피 가고 있는 고향길 아닌가.

좁다랗던 길이 4차선 도로로 변해 있어도, 마을 어귀의 공터는 온데간데 없고 낯선 공장이 들어서 있어도 고향은 여전히 아름답다.

그것은 떠나는 것이고 어딘가에 가 닿는 것이다.

도시 편에서 보면 탈출.도피, 고향에서 보면 회귀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장철수 교수 (민속학) 는 "거대한 사회, 하나의 부속품에 불과했던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하기 위한 것 혹은 자신의 과거사가 살아있고 지금은 잊혀져가는 문화가 남아있는 고향에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는 것" 이라고 말한다.

자기 존재에 대한 확인은 부모형제와 마을 어른, 그리고 꾀복쟁이 동무들 모두가 하나의 끈으로 살갑게 얽혀있던 공동체가 복원되면서 이뤄진다.

안동대 임재해교수 (민속학) 의 진단 또한 의미있다.

"의사소통이 단절된 산업사회 속의 개인은 각각 하나의 섬과도 같다.

명절을 통해 가족과 마을 주민들이 한 곳에 모여 인간적인 유대를 나눔으로써 공동체문화를 일시적이나마 되살리는 것이다. " 귀성 풍경은 먼 바다로부터 수백㎞를 헤엄쳐 자신이 태어난 강으로 향하는 연어떼의 모습과 유사하다.

'모천회귀 (母川回歸)' 라고 부르던가.

목숨을 건 처절한 대장정. 그래서 우리가 교통체증을 뚫고 고향을 향하는 것은 가소로운 일일지도 모른다.

다시 장교수의 말 - "급속한 산업화로 기존의 질서가 모두 파괴되고 제멋대로 흘러가는 우리 사회가 이 정도나마 버틸 수 있었던 것도 이같은 풍속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 귀향행렬은 언제까지고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가족들이 해외 휴양지에서 차례상을 올리는 판인데…. 대도시에서 태어나 자란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 과연 돌아갈 추억이라도 있을 텐가.

어쩌면 먼 곳에 떨어진 친척들과 화상대화를 나누며 컴퓨터 화면에 차려진 차례상에 절을 올리는 '사이버 차례' 가 등장할지도 모른다.

민속학자인 서울시립박물관 정승모 전문위원은 "전통은 어차피 시대에 맞춰 새롭게 창조되는 것이므로 옛 모습이 사라지는 것을 놓고 나쁘다고만 말할 수는 없다" 고 말한다.

기술이 발전하고 사회가 첨단화할수록 우리들 가슴속의 텅빈 공간은 더욱 커지게 마련이다.

결국 깊어만 가는 헛헛함과 고독감을 달래기 위해 방법은 달라질지언정 명절의 '뿌리찾기' 풍습은 한동안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돌아갈 곳 없는 사람들도 없지 않을 터. 그들에게 또 다른 평화를! 문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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