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스타급 신인 하니,솔직 담백한 힘의 목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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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지난달 30일 부산 수영만 대형공연장에 이어 지난 2일 서울여대 특설무대에서 '스타급 신인' 하니의 공연이 있었다.

서울공연은 지난 5일 MBC 토요예술무대에서 방영됐다.

지난 봄 부산 출신의 무명 아가씨가 세계적인 록스타들을 세션맨으로 동원해 음반을 만들었다는 뉴스는 그녀를 단박에 스타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로 인해 배경에 힘입어 국내 청중들에 자신의 존재를 인식시켰다는 우려를 낳았다.

그런 점에서 이번 공연은 그녀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딥퍼플과 오지 오스본등의 앨범을 프로듀싱하고 키보드를 친 존 퍼델.펫 리건, 메탈그룹 콰이엇 라이오트의 베이시스트 척 라이트등 음반제작에 참여한 스타급 뮤지션들이 반주를 맡았다.

세련되고 꽉찬 반주속에 울려 나온 하니의 목소리는 거칠지만 신선했고 무엇보다 힘이 느껴졌다.

기자는 서구인들 특유의 오리엔탈리즘 (동양에의 동경) 을 우선 떠올렸지만 공연후 인터뷰에서 그들은 서구 여가수에 전혀 뒤지지 않는 하니의 '힘' 에 절대적인 점수를 줬다.

한 뮤지션은 작은 키에 도발적인 미니스커트를 입고 새된 고음을 질러대던 80년대 록여걸 팻 베네타 이후 오랜만에 힘있고 거침없는 여가수를 만났다고 칭찬했으며, 다른 이는 파워 면에선 레드 제플린의 로버트 프랜트를 즐겨 모창했던 그룹 하트의 여성로커 앤 윌슨을, 신비스러움을 추구하는 취향면에선 캐나다의 신성 엘라니스 모리셋을 각각 연상시킨다고 평가했다.

그들의 말대로 하니는 파워풀한 가수다.

그녀의 노래에는 인순이등 한국 우먼록의 선구자들이 보유해온 근육질과 솔직성이 그녀만의 색깔을 띠고 들어있다.

공격성이 거세된 여성의 목소리에 익숙한 청중들 때문에 선배들이 자진철회했던 이 덕목들을 간직하고 있다.

기름진 연주를 배경으로 다소 거친 느낌이 날만큼 당당하게 내지르는 목소리는 외모만큼이나 이지적이다.

악마의 꼬임에 빠져 병속에 갇혔다가 요정의 도움으로 살아나 세상을 보는 눈을 뜬 소녀의 이야기를 11곡의 컨셉트 앨범으로 구성해낸 동화적 상상력도 특출하다.

결국 서구뮤지션들을 반하게 만든 하니의 매력은 조작된 겸손함이나 콤플렉스가 보이지 않는 자유로움이다.

아쉬운 것은 그녀의 면모가 국내에서는 어필하지 못하고 오히려 음반판매에 부정적 요소로 여겨지고 있다는 점. 아직까지 국내 여가수에게 대중이 기대하는 것은 소녀풍의 귀여움이나 촉촉함, 끈적거림이고 결국 성적 매력이다.

이같은 기준에서 보면 '이지적' 인 그녀의 목소리는 오히려 차갑고 건조해서 사랑받기 어려운 것으로 뒤바뀐다.

물론 하니의 음악에도 한계는 있다.

시대나 장르와의 교섭이 희박해 보이고 자기몰입과 직설성이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그러나 하니의 국내가요계, 특히 우먼록에 대한 공적 한가지는 부인하기 어려울 듯하다.

비록 서구 뮤지션들을 배경으로 스타덤에 올랐지만 바로 그점 때문에 국내가요계의 편견과 한계를 폭로한 셈이 됐고 이제 한국 여가수도 개성과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자기만의 팬을 확보할 시대가 왔음을 보여주었다.

강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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