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 굳게 만든 류머티즘도 꿈 그리는 내 붓은 못 꺾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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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후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화랑. 붉은 융단 위의 휠체어에 60대 여성이 앉았다. 가슴에 모은 두 손의 손가락은 대부분 엿가락처럼 굽어 있었다. 그나마 펴진 왼쪽 엄지와 집게 손가락을 이용해 그는 30㎝짜리 주방용 나무젓가락에 연결한 붓 한 자루를 가슴에 품었다.

4일 류머티즘을 앓고 있는 구족화가 김성애씨가 서울 청담동 한 화랑에서 열린 자선행사에서 입으로 목련을 그리고 있다. [최승식 기자]


이윽고 캔버스가 앞에 놓였다. 여성은 붓을 입에 물었다. 지긋이 반쯤 감은 눈으로 캔버스를 내려보며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렇게 한참을 지나 붓끝에선 하얀 목련이 피어났다.

그의 이름은 김성애(60)씨. 입으로 그림을 그리는 구족(口足) 화가다. 김씨는 이날 한국류머티스학회가 마련한 ‘女Rhew사랑(여류사랑, Rhew는 류머티즘에서 따온 것)’ 자선행사에 참가했다.

‘여류사랑’은 여성 관절염 환자들을 위로하는 행사로 올해 두 번째다. 류머티즘을 앓는 김씨는 “30년 넘게 관절염으로 고생했다. 나처럼 고통받는 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어 그림을 그렸다”고 말했다.

그에게 처음 류머티즘이 찾아온 것은 7세 때였다. 다리가 쑤셔서 어머니에게 업혀 다니지 않으면 몸을 꼼짝할 수 없었다. 밤마다 아픈 다리를 부여잡고 “제발 낫게 해 달라”고 울며 기도했다. 기도의 힘 때문이었을까. 1년 뒤 그는 다시 멀쩡히 걸어다니게 됐다.

하지만 기쁨은 잠시였다. 다시 류머티즘이 몸 속을 파고들었다. 고등학교를 나와 한창 회사에 다니던 27세 때였다. “재발하기 전까진 남들처럼 살았어요. 회사 다니고 돈도 벌고…. 그렇게요. 하지만 병의 재발과 함께 모든 게 날아가 버렸죠.” 증세가 심해져 30세 되던 해엔 온몸 구석구석의 관절이 쑤시고 아파지는 전신 장애가 왔다. 집 밖을 나갈 수 없을 정도였다. 방 안에서도 바닥을 기어다니며 겨우 움직였다.

“하루하루가 절망이었죠.” 문득 붓을 잡은 건 40세가 되고 나서다. 나이가 들수록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저 먹고 자고…. 내가 한 일이 뭔가’ ‘남의 도움 없이 할 수 있는 건 뭘까’ ‘어릴 적 내 꿈은 뭐였나’. 결국 그는 어렸을 적 화가가 꿈이었음을 떠올렸다. 그러곤 아픈 손으로 붓을 잡았다. 그때부터 구족화가의 길을 걸었다.

이후 5년이 지났다. 그는 붓을 물었다. 손가락 관절염이 점점 심해진 것이다. 하지만 지긋지긋한 류머티즘도 ‘화가가 되겠다’는 그의 굳은 결심을 꺾진 못했다. 입에 붓을 문 채로는 하루 2~3시간밖에 그림을 그릴 수 없었다. 턱 관절에 무리가 가기 때문이다. 그림 하나 완성하는 데 짧으면 한 달, 길게는 두 달이 걸렸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은 대가는 무엇보다 달콤했다. 김씨는 1996년 대한민국 장애인 미술대전에서 입선으로 등단해 ‘진짜 화가’가 됐다.

그에게 끝까지 그림을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를 물었다. “제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누군가 밥을 먹여주면 씹는 거, 화장실에 앉혀주면 배설하는 게 전부였어요. 하지만 혼자 할 수 있는 게 있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포기하지 않았더니 정말 화가가 됐잖아요.”

수줍게 웃는 그의 옆엔 목련이 피어 있었다. 이날 목련을 그린 이유는 “희망 차고 화사한 봄을 담고 싶어서”였다고 했다.

장주영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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