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연극제 리뷰]'예언자 포폰'을 보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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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세계 마당극큰잔치' 가 개막식과 길놀이.장승세우기등의 개막행사 및 콜롬비아 타이에르극단의 '예언자 포폰' 초청공연을 시작으로 지난 6일 막이 올랐다.

오는 28일까지 과천은 풍성한 마당극 잔치마당이다.

개막 첫 작품으로 공연된 '예언자 포폰' 은 4백50년전 민족내부의 분열과 외세에 침탈당한 콜롬비아의 가슴 아픈 역사를 소재로 한 거리극으로 그와 유사한 역사적 아픔을 지닌 우리에겐 시사하는 바가 컸다.

콜롬비아 무이스카 인디언들 사이에서 전해져 내려온 구전설화 (원주민들의 패망을 예언한 무당 포폰에 관한 이야기) 를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72년 타이에르극단을 창단한 연출자 바르게스에 의해 거리극으로 꾸며져 과거 스페인의 총칼에 정복당했던 남미 각국에서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이 작품에서는 정치력 부재에 따른 민족 내부의 분열, 외세의 침략과 그에 따른 살상과 약탈, 그리고 이민족간의 문화적 충돌등의 역사가 서사적으로 펼쳐 졌으며, 나아가 영원한 사랑이야기를 통한 대안 제시가 몽환적인 꿈을 통해 전개되었다.

남미 특유의 민속악기 연주 속에 이뤄진 이번 공연은 장대다리 묘기와 신들린 무당의 주술적 행위를 비롯한 각종 민속놀이적인 연기, 갖가지 소품들의 활용과 무대장치의 임기응변적인 전환, 전쟁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강렬한 유황 냄새를 통해 이국적인 거리극 공연의 맛을 충분히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

장대다리로 절대권력을 상징한 것이나 자전거를 이용한 무대장치로 대포를 앞세운 채 침략한 스페인 함대를 나타낸 것, 무이스카 원주민의 조상신을 모신 신전을 뒤집고 십자가와 종탑을 내걸어 교회로 탈바꿈시킨 발상등이 눈길을 끌었다.

특히 효과적으로 활용된 극적인 장치로는 주인공 포폰의 1인2역을 들 수 있다.

1막에서 원주민들의 정신적인 지도자인 포폰이 2막의 환상장면에서는 가면과 의상을 갈아 입고는 그들과 종교적인 마찰을 벌일 천주교 사제의 역할로 탈바꿈했다. 이는 환상에서 깨어난 그로 하여금 민족적 고통의 체험을 극대화하는 효과를 거두게 했다.

이 작품이 특별히 우리들의 관심을 끌게 한 것은 민속놀이와 전통극.구전설화등을 현대적으로 계승하는 과정을 적극적으로 채택하였다는 점이다.

다양한 민속음악과 현대음악 반주에 곁들인 해설 및 극적 분위기를 고양시키는 노래를 통한 서사적 장면 그리고 인물들이 등장하는 극적장면을 교차적으로 진행시키는 방식이 그것이다.

이는 창 (唱) 과 아니리가 교대로 이어지는 우리의 판소리 방식과 아주 흡사하여 두 나라 민속극의 유사성까지 확인해 준 기회가 됐다.

이재명 (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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