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지도]64.민중 미술가…걸개그림·벽화운동(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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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일반 대중과의 소통을 목적으로 했던 민중미술이니만큼 전시장 속의 미술보다는 현장에서 민중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미술형식이 그 발전과 전개에 더욱 큰 역할을 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80년대 시위현장을 장식했던 대형 걸개그림과 삭제 소동이 잇따랐던 벽화다.

걸개그림은 각종 집회나 시위 현장에서 참가자들에게 그 현장에 모인 목적을 분명하게 부각시켜야 하고 또 단기간 내에 완성해야 한다는 특징 때문에 미술품의 심미적인 측면보다는 선동성이 강조되었다.

이때문에 과연 예술로 볼 수 있을 것이냐하는 논란이 계속됐다.

벽화운동은 걸개그림과 함께 민중미술에서 빼놓을 수 없는 집단창작의 한 형식. 환경미술의 하나로만 인식됐던 벽화는 민중미술 진영이 멕시코벽화운동 등을 모델로 해서 이를 미술운동과 결합시켜 나갔다.

걸개그림은 무대미술이라고 표현될만큼 대형작품이었지만 바로 떼어낼 수 있다는 용이함이 있었다.

하지만 벽화는 한 장소 속의 고착성 때문에 당국과 마찰을 빚었다.

신촌과 정릉에서의 벽화 제거 소동은 이런 현실을 잘 보여준다.

86년 일간지 사회면을 장식했던 신촌벽화 사건은 당시 홍익대에 재학중이던 김환영과 남규선등 일부 학생들이 신촌역 앞의 작업실 건물에 제작한 벽화 '통일과 일하는 사람' 을 경찰이 지우면서 문제가 됐다.

학생들은 건물주의 허가를 받았다고 주장했지만 주먹을 불끈 쥐고 망치를 치켜든 모습이 지나치게 의식화된 것이라는 이유로 철거됐다.

이후 서울미술공동체 출신인 유연복이 정릉의 자신의 집 담벼락에 '상생도' 를 그려 또 한번 경찰에 의해 강제로 지워지는 해프닝을 겪었다.

두 벽화 모두 지금은 흔적을 발견할 수 없지만 80년대 벽화운동의 대표적인 사례로 손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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