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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의 처리” 약속도 뒤집고 … 국회는 끝내‘경제’를 외면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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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민주당은 본회의 지연 작전부터 펼쳤다. 당초 오후 2시에 열리기로 돼있던 본회의는 의결정족수 미달에 민주당의 지연 전술로 오후 5시, 오후 7시로 연기를 거듭했다. 민주당은 본회의가 열리려는 시간에 맞춰 의원총회도 열었다.

3일 밤 국회 본회의에서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상정된 뒤 의원들의 발언 시간이 3분으로 제한되자 민주당 의원들이 단상으로 나가 이윤성 국회 부의장에게 항의하고 있다. 여야의 줄다리기 끝에 은행법개정안 등의 처리가 결국 무산됐다.[김형수 기자]


본회의는 오후 9시가 다 돼서야 열렸다. 하지만 민주당 이석현·송영길 의원이 개회하자마자 발언을 신청, 전날 직권상정 의사를 밝혔던 김형오 국회의장을 비난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들은 발언 시간이 초과된 뒤에도 단상을 떠나려 하지 않았다. 일종의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방해)였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법안 처리를 지연시키려는 것 아니냐”고 항의했다. 이후에도 민주당 의원들은 김 의장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일부 법안을 제외하고는 투표에 응하지 않았다.

또 50여건의 법안이 통과된 뒤 출자총액제한제를 폐지하는 내용의 쟁점법안인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상정되자 홍재형 의원 등 민주당 소속 의원들은 수정안을 제출하고 나섰다. 공정거래법은 전날 여·야·정 협의체를 거쳐 이미 여야가 처리하기로 합의한 법안이었다. 수정안은 시간끌기용인 셈이다.

홍 의원은 “선의의 소액주주들이 피해를 입는 일이 양산되지 않도록 사후적 규제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공시제도 도입에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만이라도 도입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결국 공정거래법안은 원안대로 상정됐고 이후 민주당 의원들은 반대토론을 신청했다. 하지만 김 의장을 대신해 사회를 잠시 맡은 이윤성 부의장은 “처리할 민생 법안이 많으니 발언시간을 3분으로 제한하겠다”고 제지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막무가내였다. 서갑원 의원 등은 의장석 앞에까지 나와 “왜 시간을 제한하나. 반론이라도 할 수 있게 해야 하는 것 아니냐”라며 강하게 항의했다. 이 과정에서 한나라당 의원들과 민주당 의원들이 서로를 비난하는 등 본회의장 곳곳에서 소란이 일었다.

이날 민주당의 목표는 금산분리 완화를 담은 은행법 개정안을 막는 것이었다. 본회의에 앞서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한나라당 소속 김영선 위원장이 은행법 개정안을 강행 처리했기 때문이다.

현행 4%인 산업자본(기업)의 은행지분 한도를 8% 늘리는 선까지 의견이 접근된 상황에서 기습을 당한 민주당은 본회의 지연전술로 맞섰다. 양당은 정책위의장 간 재협상을 시도했으나 무위로 끝났다.

의장실에서 잠시 숨을 돌린 김 의장은 밤 11시35분 본회의장 사회를 다시 자청했다. 그는 “국민들이 보고 있다”고 호소했지만 시간이 너무 없었다. 결국 은행법 개정안과 저작권법, 디지털방송전환특별법 등 전날 처리키로 합의했던 법안들의 처리는 무산됐다. 본회의가 끝난 직후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미처리 법안은 3월에 단 며칠이라도 국회를 열어 법안을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백일현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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