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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정사 기록 세운 2월 ‘폭력 국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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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일. 김형오 국회의장의 개회사에는 희망과 기대가 담겨 있었다. “2월 국회는 경제위기 극복 국회,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는 국회가 돼야 합니다.” 경제위기 극복 국회가 돼야 한다는 그의 말에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았다.

2월 11일. 민주당 장세환(전주 완산을) 의원의 대정부 질문엔 잔뜩 날이 서 있었다. “이명박 정권이 파쇼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매진하고 있습니다. 용산 철거민들이 농성하는 이유와 그들의 생명·안전은 애초부터 이 정권의 관심 밖이었습니다. 다만 파쇼체제로 가는 제물이 필요할 뿐입니다. 저는 이명박 정권을 사이코패스 정권으로 규정합니다.” 한나라당 의석이 술렁거렸다. “너무하는 거 아냐.” 그러나 이건 예고편일 뿐이었다.

3월 1일. 민주당 당직자들은 국회 본관 로텐더홀 계단 위에 있던 한나라당 차명진(부천 소사) 의원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미 고성이 오간 뒤였다. 증오는 행동으로 이어졌다. 한 당직자는 차 의원의 목을 휘감고 팔을 꺾었다. 차 의원은 계단 아래로 나동그라졌다. 그 퍼런 서슬에 로텐더홀에 앉아 농성하던 한나라당 의원들은 지켜만 볼 뿐이었다.

필름을 찬찬히 거꾸로 틀어본 2월 국회, 정확히 말해 제281회 임시국회의 일그러진 모습이다. 폐회일인 3일 자정 무렵까지 본회의장에서 여야 의원들 간 고성과 몸싸움이 이어졌다. 2월 국회가 남긴 상처는 깊고도 넓다.

본회의가 열린 2일과 3일 이틀간 법안 160여 건이 처리됐다. 하지만 법안 심사에 들인 시간은 고작 일주일 정도다. 2월 19일까지는 미디어 관련법 등 쟁점 법안을 둘러싼 갈등 때문에 아예 상임위가 열리지도 못했다. 2월 25일 문방위에선 곪았던 게 터졌다. 미디어법이 위원장 직권으로 상정됐다. 야당은 상임위 보이콧을 선언했고, 국회 파행은 3월 2일 여야가 합의문을 쓴 뒤에도 계속됐다.

2월 국회가 남긴 상처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해머와 소화기가 난무한 2008년 말 폭력 국회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가라앉기도 전에 폭력은 국회의사당 안에서 또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2월 27일엔 한 국회의원이 발의하겠다는 법안에 불만을 품은 외부인이 국회 안에서 보복 행위를 했다. 전여옥(서울 영등포갑) 의원 폭행 사건이다. 이틀 뒤 국회의원을 당직자가 국회의사당 안에서 폭행한 것도 전에 보기 힘든 장면이었다. 헌정사상 처음이라는 표현을 쓰기가 부끄러울 정도다. 그 바람에 의원이 의원을 폭행한 사건은 큰 뉴스도 되지 못했다.

다음 달이면 18대 국회는 탄생 1년을 맞는다. 그 1년 동안 18대 국회는 참으로 많은 새 기록을 세웠다. 문제는 그 대부분이 부끄러운 기록이란 점이다.

의회(議會·Parliament)란 용어를 구성하는 프랑스어 ‘parler’나, 한자 ‘의(議)’는 모두 ‘말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의회란 결국 ‘말로 하는 모임’이란 뜻이다. 헌정사를 고쳐 쓰면서까지 폭력의 기록을 남기는 건 정말이지 이번 국회로 끝내야 한다. 폭력의 고리를 끊을 사람은 다름아닌 국회의원 본인들이다.

정효식 정치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