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우리는 음악이 맺어준 부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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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 에이미(中)와 함께 포즈를 취한 이경선.브라이언 수츠 부부. [신동연 기자]

20일 서울 순화동 호암아트홀에서 듀오 리사이틀을 하는 재미(在美) 바이올리니스트 이경선(39)씨와 피아니스트 브라이언 수츠(44). 이 부부에게 음악은 평생의 업(業)이자 서로를 맺어준 인연의 끈이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1992년. 이씨는 서울대를 졸업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피바디음악원과 줄리어드대를 마친 직후였고, 수츠는 텍사스주립대(오스틴)를 졸업한 뒤 예일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연주가로 활동할 때였다.

"하와이 공연에 동행할 반주자를 찾다가 남편을 소개받았어요. 리허설을 위해 첫 만남을 가졌을 때 선비처럼 단아한 인상에 반했죠. 게다가 그의 피아노 반주에서 남을 배려하는 마음 씀씀이가 느껴져 더 좋아하게 됐어요. 하지만 자존심 때문에 먼저 고백하기가 망설여졌죠."(이씨)

이씨의 망설임은 오래가지 않았다. 하와이 연주여행 이틀째, 수츠 쪽에서 먼저 "좋아한다. 그것도 매우 진지하게…"라고 고백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사랑을 알게 된 이씨의 부모는 내키지 않았다. 수츠가 외국인인 데다 이제 막 연주가로서 첫발을 내딛는 딸의 장래에 지장을 초래할까 걱정스러웠던 것이다.

"오히려 제 음악 생활에 도움이 될 거라고 아무리 설득해도 듣지 않으셨어요. 그러던 중 93년에 제가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 나가게 되자 부모님께서 '정 그렇다면 이 대회에서 입상해 네 말을 입증해봐라'고 하시더군요."

몸이 단 수츠는 극성스러운 선생님으로 돌변해 이씨가 연습에 매진하도록 휘몰아쳤다. 좀더 다듬어야 할 대목을 체크리스트로 만들어주는가 하면 자잘한 데 신경쓰지 말라며 식사 수발까지 들었다. 지성이면 감천일까, 이씨는 3위에 입상했고 이듬해 두 사람은 한국과 미국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현재 이씨가 교수로 있는 미국 오벌린대 음대 근처에서 딸 에이미(9)와 살고 있는 두 사람은 각기 연주 활동(이씨)과 지휘.작곡(수츠) 등으로 바쁜 와중에도 꾸준히 한 무대에 서왔고, 두 장의 음반을 함께 내기도 했다.

"바이올린 외엔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는 빵점짜리 아내를 참아줄 사람도 남편 외엔 없을 것 같아요."(이씨)

"아내는 바이올린을 참 잘 켜요. 바이올린처럼 요리도 시원시원하게 잘한다면 더욱 좋을 텐데…"(수츠)

신예리 기자<shiny@joongang.co.kr>
사진=신동연 기자 <sdy1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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