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오르는재계새별]시리즈를 끝내며 … 취재기자 방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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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최근 주목받는 중견그룹들을 다룬 시리즈 '떠오르는 재계 새별' 이 20회로 끝을 맺었다.

이 시리즈는 지난해 2월부터 국내 50대그룹을 주1회 1개면씩 연재한 기획시리즈 '재계를 움직이는 사람들' 의 연장선상에 있다.

따라서 이 두 시리즈를 통해 한국 재계순위 약 70위까지 그룹을 거의 들여다본 셈이 됐다.

1년8개월에 걸친 연재를 마치며 과연 우리 재계의 현주소는 어떠한지, 나아갈 방향은 어느 곳인지 점검해 보기 위해 취재기자들의 방담을 마련했다.

- 국내 상위권 그룹들을 취재하면서 다시금 느낀 점은 기업 흥망성쇠의 갈림길은 무엇보다 업종 선택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적 기업풍토에서 업종 선택은 결국은 오너의 예견력과 결단에 달려 있습니다.

또 운도 작용한다고 봐야지요. 이같은 흐름은 30대 그룹이나 70대 그룹이나 모두 마찬가지고요.

- 중견그룹 중에는 우직하게 한 우물만 파서 업종전문화를 이루고 그 업종에서 한국의 최정상은 물론 세계에서도 손꼽는 업체가 된 곳도 있습니다.

물론 그 업종의 성장한계성등으로 재계순위는 뒤로 밀리는 이중성을 보여주고 있지만요. 그러나 자신의 몸에 맞지않는 새옷 (업종전문화) 을 섣불리 입다가 좌초한 그룹도 적지 않지요.

- 주택전문업체들의 등장과 몰락이 많았던 점도 두드러집니다.

청구.우방등은 대표적인 아파트 전문업체로 30년 안팎의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새별로 떠올랐습니다.

반면 우성건설.한신공영등은 자금난을 못 견디고 무너졌습니다.

분에 넘치는 사업영역 확대가 부도로 이어진 것이지요.

- 이번 시리즈를 통해 중견그룹들이 21세기의 새 업종으로 너도나도 정보통신과 유통업 진출을 하겠다는 점을 확인했는데, 걱정이 없지 않습니다.

이들 중견그룹 뿐만 아니라 30대 그룹들도 비슷한 추세입니다.

적절한 자율적 영역 조정이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 반면 일부 탄탄한 중견그룹들은 한 우물 (업종) 만을 고수하며, 그 분야의 대표적인 기업이 되려는 곳도 있습니다.

사업다각화 못지않게 기존 업종의 고부가가치화 노력도 긴요하다는 것이지요. 이탈리아가 사양산업으로 치부되어온 섬유를 패션업종으로 바꾸며 경쟁력을 되찾았듯 '사양 기업은 있어도 사양 업종은 없다' 는 말을 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 중견그룹들을 취재하면서 느낀 점은 이들 그룹들이 규모가 작거나 연륜이 짧아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 이들 중에는 어느 대그룹 못지않게 건실한 경영을 하고 있는 기업이 많다는 점이었습니다.

30대그룹과 비교할때 짜임새는 다소 떨어지지만 역동적이며 향후 성장에 대한 도전적인 비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 오너들의 감동적인 인생역정 (人生歷程) 도 많았습니다.

이들 중견그룹중 상당수가 30대그룹과 견줄수 있는 빛나는 기업사 (史) 와 본받을만한 오너의 경영철학, 번득이는 용병술을 구사하고 있었습니다.

-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고학으로 학업을 마친뒤 사회에 맨손으로 뛰어들어 자수성가한 사례, 교사.공무원.회사원등을 지내다 중년에 창업해 성공한 케이스등 가슴 찡한 창업사 (史) 도 많았습니다.

"창업하기에 가장 좋은 나이는 40대" 라는 한 오너의 주장이 지금도 귓가에 생생합니다.

이들 기업의 이야기는 바로 한국경제 성장사의 축소판이 아닌가 싶습니다.

- 물론 중견그룹에는 문제점도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기업활동의 투명성에 대한 인식 부족입니다.

기업이 일정한 규모로 커지면 사회적 책임이 따릅니다.

30대그룹에 접근해 있는 한 그룹 관계자는 "30대그룹에 진입하면 규제가 갑자기 많아지고 언론의 감시를 받게 되기 때문에 30대그룹에 들어가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는 말까지 하더군요.

- '그룹내 의사결정을 누가 하느냐' 는 점은 이번 시리즈의 중점 과제였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상위 그룹일수록 조직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큰 반면 규모가 작아질수록 소수 최고경영자의 결정권한이 크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예컨대 10대그룹의 경우 최고경영진 합의체 같은 기구가 있고 기조.비서실 조직도 잘 짜여져 있는 반면 중견그룹으로 내려갈수록 회장이 주요 계열사의 사장까지 겸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회장이 직접 나서니까 의사결정이 빠른 장점이 있지만 검증.제어기능은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약점이 있읍니다.

- 중견그룹 중에는 오너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곳도 많았습니다.

고려대 문형구 교수 (경영학과) 는 이번 시리즈를 분석한 결과 전문경영인이 오너에게 '노 (NO)' 라고 말한 사례를 별로 찾지 못했다고 지적하더군요. 재미있는 점은 중견그룹들도 겉으로는 30대그룹과 마찬가지로 거의 예외없이 '전문경영인에 의한 자율경영' 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취재진이 보기에는 구호에 그친 경우가 많았습니다.

- 중견그룹들은 업종이 비교적 단순하고 계열사 수도 적으며 대부분 연륜도 짧아 그만큼 길러낸 전문경영인도 적기 때문에 오너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큰 것 같습니다.

중견그룹이 규모가 커지면 상위 그룹들을 답습해 그룹체제로 전환하거나 기조.비서실을 만드는 추세도 볼수 있었습니다.

- 총수의 개성도 크게 작용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우방그룹의 이순목 회장은 건설업종의 특성상 대표가 법적 책임을 질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은데도 "책임을 미룰 생각이 없다" 며 계열사 대표이사직을 여러 곳 맡고 있더군요. 대성그룹의 김수근 회장도 가스업을 하면서도 '오너는 전문경영인처럼, 전문경영인은 오너처럼' 이라며 책임진다는 차원에서 대표이사직을 갖고 있습니다.

- 기업을 하는 사람들은 '역시 믿을 것은 핏줄' 이라는 인식이 강합니다.

이른바 친족경영을 하는 곳이 적지 않게 눈에 띄었습니다.

중견그룹의 경우 회사 수가 많지 않고 전문경영인도 적다보니 친인척 비중이 상대적으로 더 두드러져 보입니다.

- 이는 공채제도 유무에서도 연유를 찾을수 있습니다.

큰 그룹들은 내부적으로 인재를 육성할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데다, 인지도가 높아 우수인재 채용에 유리합니다.

그러나 기업 규모가 작고 연륜이 짧은 중견그룹의 경우 최고경영진의 내부 양성이 아무래도 어렵지 않겠습니까. 그러다보니 학연.혈연등에 의한 충원이 많다고 봐야지요.

- 전문경영인 중에는 그룹 크기와 관계없이 총수와의 학연.지연으로 맺어진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특히 대학보다는 고교 동문이 두드러집니다.

30대그룹도 마찬가지였지요. 사업다각화 과정에서 친인척을 포함한 내부 충원만으로는 모자라 외부에서 전문경영인을 영입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는 점도 특징입니다.

- 재계 시리즈는 1년8개월에 걸쳐 한국의 70개 주요 기업들을 망라해 다룸으로써 지금까지의 각종 기업관련 기획연재물과는 차별화했다고 봅니다.

특히 그간 30대 그룹 위주로 다뤄왔던 기업뉴스의 지평을 넓혀 새롭게 떠오르는 31위 이하 그룹과 중견그룹들을 본격 취재.보도한 첫 대형연재라는 점에서 여러가지로 의미있는 기획이었다고 봅니다.

- 때마침 재계가 대변혁을 겪은 시기였다는 점도 관심을 끌었습니다.

연재중인 96~97년은 많은 그룹에서 회장을 포함한 최고경영진의 세대교체가 있었고, 부도.부도유예.인수합병 (M&A) 등으로 재계 부침이 무척 심했던 시기였읍니다.

이같은 재계의 변혁 현장을 시리즈에 담을 수 있었다는 점은 큰 수확입니다.

- 중견그룹을 연재하면서 처음엔 30대 그룹을 다룬 내용보다 독자들의 관심이 줄지 않을까 내심 걱정했었지요. 그러나 이는 기우 (杞憂) 였읍니다.

시리즈 연재중에 이미 기사화된 그룹의 게재일이나 연재횟수, 단행본 출간계획 여부등을 묻는 독자들의 문의전화가 적지 않았습니다.

- 이 시리즈가 기업경영 사례연구 자료로 활용된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서울대 경영학과의 이경묵 (李京默) 교수는 이번 시리즈에 담긴 중견그룹의 성장사및 성장전략을 기업 사례연구의 자료로 쓰겠다고 하더군요. 취업준비생들도 많은 관심을 보여왔습니다.

대학의 취업알선담당 직원들은 "그동안 중견그룹을 다룬 참고자료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이 시리즈가 면접이나 자기소개서 작성등 취업 준비에 도움이 될 것" 이라고 하더군요.

- 이 시리즈의 전편이라 할수 있는 '재계를 움직이는 사람들' 이 시리즈 게재 도중 한국기자상을 수상함으로써 독자들의 관심도를 높이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딱딱한 경제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 써서 일반독자들도 무리없이 읽을 수 있었던 점이 돋보였다" 는 심사평이었읍니다.

- 긍정적인 측면을 많이 부각한 반면 문제점 지적등 비판적 측면이 부족했고 오너의 육성을 많이 담지 못했다는 지적도 받았습니다.

시리즈 취재중 오너 또는 오너의 직계가족등 핵심 실세를 직접 만난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한국기업의 풍토상 직접 인용하지 못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다음달 단행본을 발간할 때 보충하도록 합시다.

- 여러차례에 걸친 취재 요청에도 불구하고 해당그룹에서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극구 꺼려 기사화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반면 그룹 내용이 견실하고 해당그룹에서 취재요청도 있었으나 지면사정등 여러 요인으로 소개하지 못한 그룹도 있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양해를 구합니다.

- 또 취재과정에서 발굴한 숨겨진 이야기나 일부 그룹의 경우 취약한 자금난등을 기사화할 경우 민감한 시기에 해당 기업에 뜻하지 않은 피해를 줄 우려가 있어 이 역시 신중을 기해야 했습니다.

- 취재기자의 입장에서는 장기연재를 해오면서 나름대로 애정과 노력을 많이 기울였고 그만큼 자부심과 함께 아쉬움도 많이 남았습니다.

끝으로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건실한 경영을 해온 많은 중견그룹들에게는 이번 시리즈가 기업이미지를 높이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정리 = 이원호.이승녕 기자

* 취재기자 명단

박병석 부국장대우 경제2부장, 성태원.민병관.유규하.박의준 차장, 박영수.고윤희.이영렬.이수호.홍병기.이원호.신성식.유권하.이승녕.심재우 기자

* 시리즈 게재일자

〈재계를 움직이는 사람들〉 31신호 96년10월4일 32미원 10/11 33 삼양 10/18

34삼환 10/25 35아남 11/1 36청구 11/7 37거평 11/14 38동양화학 11/21

39한글라스 11/28 40조선맥주 12/4 41새한 12/11 42대한전선 12/18

43동국무역 11/25 44통일 97년 1월8일 45동원 1/15 46태광산업 1/22

47강원산업 1/29 48대농 2/5 49한신공영 2/12 50금강.고려화학 2/19

〈떠오르는 재계 새별〉 ①신동방 97년 2월27일 ②대성 3/6 ③신원 3/13 ④애경 3/20 ⑤대교 4/3 ⑥태평양 4/17 ⑦미주 4/24 ⑧일진 5/1 ⑨수산 5/8 ⑩한일시멘트 5/15 ⑪갑을 5/22 ⑫삼보 5/29 ⑬대한해운 6/3 ⑭풍산 6/10 ⑮대한펄프 6/24 16우방 7/8 17동방 7/15 18종근당 7/22 19진도 8/1920산내들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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