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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W] 파리서도 길거리 축구 응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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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 17일 파리시청 앞 광장에 모인 1만여명의 파리 시민이 대형 전광판 앞에서 프랑스를 응원하고 있다.

2002년 6월의 대한민국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해 여름을 더욱 뜨겁게 했던 2002 한.일 월드컵의 열기 때문이다. 특히 4강 신화를 창조하며 경기장과 길거리를 붉은 물결로 수놓았던 한국 응원단들의 모습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2004년 6월. 한국의 길거리응원이 지구를 반바퀴 돌아 프랑스 파리에서 화려하게 재현됐다.

17일 오후 8시 파리시청 앞 광장. 1만여명은 족히 돼 보이는 사람들의 눈길이 광장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에 쏠렸다. '유럽의 월드컵'이라 불리는 2004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04) 프랑스 대 크로아티아의 예선 경기에서 프랑스팀을 함께 응원하기 위해 나온 사람들이다. 파리시청 측은 이들을 위해 시청 앞 광장에 대형 스크린을 설치, 응원공간을 마련해줬다.

경기 시작 시간이 한시간 가까이 남았는데도 스크린이 잘 보이는 좋은 자리는 이미 다 찼다. 콜라와 샌드위치로 식사를 때우는 사람들과 맥주를 마시며 경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기다리는 동안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파도타기 응원도 어설프게나마 한두차례 선보였다.

사람과 옷색깔.장소만 다를 뿐 2년 전 서울시청 앞 광장의 거리응원 그대로였다. 프랑스 대표팀을 상징하는 푸른색 유니폼을 입은 '푸른 악마'들도 꽤 있었다. 특히 대학생 또래의 젊은이들은 대부분 청바지를 입고 나와 푸른색으로 통일하려고 애쓴 흔적이 역력했다.

북을 들고 나온 사람, 프랑스 국기를 몸에 두르고 온 사람, 얼굴에 프랑스 국기를 그려넣은 사람 등 모두 축제를 함께 만드는 사람들이었다.

증권회사 금융분석가인 다비드 에르슈(24)는 "2002년 월드컵을 기억한다"며 "그때 프랑스는 운이 없었지만 이번 유로 2004에서는 당연히 우승할 것"이라고 큰소리쳤다.

응원하는 사람들과 달리 질서유지를 맡은 경찰들은 곤욕을 치러야 했다. 경기가 시작될 때까지 광장 앞 4차로에서 교통정리를 하던 경찰은 경기가 시작되자 도로를 아예 막아버리고 밀려드는 응원단에 자리를 내줬다. 응원단은 광장 한쪽에 자리잡은 분수대까지 점령했다. 물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몇몇 광적 팬은 시청 건물 쪽 동상 위에 올라가 경기를 지켜봤다. 시청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주변 호텔이나 건물들은 방마다 창문을 열어놓고 걸거리응원에 동참하는 모습이었다.

파리의 길거리응원은 한국 '붉은 악마'들의 응원만큼 조직적이지는 못했다. 응원가도 프랑스 국가인 '라 마르세예즈'가 고작이었다. 응원을 주도하는 사람도 없었다. 고작 가끔씩 "알레 알레, 지주(지단의 애칭)"(가자, 가자, 지단)라고 소리칠 뿐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저 나름대로 고함을 지르고 박수치면서 스스로 프랑스인이라는 사실을 느끼고 감사하고 있었다. 마치 우리가 2년 전 길거리응원에서 한국인임을 확인했듯이.

파리=박경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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