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 계속 땐 이라크 계엄령 선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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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라크 바그다드 인근에서 17일 발생한 차량폭탄 테러 현장을 살펴보기 위해 모여든 주민들이 박격포탄에 의한 2차 공격을 피해 달아나고 있다. [바그다드 AP=연합]

이라크 임시정부가 최근 고위 관리 암살과 차량 폭탄 테러 등으로 치안상황이 악화하자 30일 주권 이양 후 계엄령 선포를 검토하고 있다고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가 18일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하짐 살란 이라크 국방장관은 "공격이 계속되면 계엄령 선포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무와파크 루바이 국가안보보좌관도 "각료들이 계엄령 선포 구상을 활발히 검토 중"이라고 확인했다. 임시정부의 이 같은 움직임은 치안상황이 좀처럼 개선될 기미가 없기 때문에 주권 이양 후 더욱 폭넓은 보안 권한을 행사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17일 바그다드 중심부에 있는 이라크 민방위군(ICDC) 모병센터에서 대포 포탄이 실린 차량 테러로 35명이 숨졌다. 같은 날 바그다드 북부에서도 차량 폭탄이 터져 이라크 민방위군 병사 6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날 공격은 최근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 이라크 고위 관리 암살과 군사.산업시설에 대한 파괴행위 등과 맥을 같이하는 조직적 공격으로 분석된다.

게다가 연합군 측과 계약한 외국 기업의 민간 직원들에 대한 자살 공격도 계속되고 있다. 이와 함께 이라크 남부와 북부의 송유관에 대한 공격으로 이라크의 주요 수입원인 석유 수출까지 급격한 감소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그러나 민주주의 실현 약속을 깨뜨리지 않으면서 질서를 회복해야 하는 이라크 임시정부로서는 계엄령 선포가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계엄령 선포가 억압적인 독재 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옛 사담 후세인 정권이 사용했거나 현재의 많은 이슬람 정권이 사용하고 있는 권위주의적 법령과 지배체제들과 유사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루바이 보좌관은 "계엄령 선포 구상이 초기 단계에 불과하며 미국 측과 협의가 이뤄지지 않은 게 사실"이라며 이라크 새 국가 설립의 기초로 3월 합의된 임시헌법에 비상통치에 관한 조항이 없기 때문에 새로운 법이 제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새 법은 포괄적 권한을 가져선 안 되며 시간과 공간적 제한 규정도 있어야 할 것"이라면서도 "사람을 보자마자 쏴버리는 테러범들에 대처하기 위해선 보다 능동적이고 강력한 법으로 무장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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