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애나 신드롬 우리정서에 문화적 충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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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성녀인가 탕녀인가' - .

전세계 2백여국에서 25억명 이상의 시청자가 TV로 생중계된 장례식을 지켜보며 '다이애나 신드롬' 의 물결 속에 파묻힌 6일 밤 많은 국민들은 엄청난 문화충격에 정서적 혼란을 겪어야 했다.

사고전까지 다이애나는 진정한 사랑과 자유를 갈구한 비련의 여인으로 동정을 받긴 했지만 뭇 남성들과 염문을 뿌리는 '자유로운 여자' 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던게 사실. 그러나 마침 테레사 수녀의 선종 (善終) 이 알려진 날 토니 블레어 영국총리가 다이애나를 '성녀' 라고 지칭하는 것을 지금까지의 한국적 정서로는 이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젊은층들, 특히 여성들은 영국 왕실의 숨막힐 듯 정형화된 권위에서 벗어나 스스로 자유로운 삶을 찾아 구가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자비의 나날을 산 천사였다는 의견이 많아 우리 의식도 많이 변하고 있음을 실감케 했다.

회사원 玄모 (24.여) 씨등 상당수 여성들은 다이애나의 남성편력에 대해 '애정없는 위선적인 정숙' 보다 '진정한 사랑' 을 찾아나선 그녀의 용기에 찬사를 보냈다.

또 진정한 사랑을 찾아나서게 된 용기의 배경에 주목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은 그녀가 사고로 숨진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매스컴이 그녀의 전 생애를 고결했던 것처럼 포장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반응이었다.

또 다이애나의 죽음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서구 언론에 대한 비판이 PC통신에 쏟아졌으며 이를 위성중계한 방송국에는 "서양정서의 맹목적 추종이며 선정적인 상업주의의 발로" 라는 비난전화가 빗발쳤다.

성균관대 유학과 이기동 (李基東) 교수는 "그녀의 생전 행실이 우리 정서에 비춰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분별하게 미화하는 것은 젊은이들의 결혼관과 삶의 태도에 좋지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고 우려했다.

회사원 任모 (31.서울강남구수서동) 씨도 "다이애나가 이혼 뒤에도 활발한 봉사활동을 한 것은 인정하지만 고인의 죽음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듯한 서방언론의 보도행태에 현혹될 필요는 없을 것" 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박사과정 김형욱 (金亨昱.30.여) 씨는 "스스로 노력해 얻어낸 것이 아닌 지위 속에서 버겁게 버둥거리다 숨진 그녀의 삶에 지나치게 흥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고 말했다.

일간지에 수차례 정치광고를 게재했던 ㈜가우디 배삼준 (裵三俊.46) 사장은 "생전의 모습이야 어쨌든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고 왕실의 전통을 존중한 '의식' 은 보기 좋았으며 진정한 민주주의는 국가의 권위에 대한 존중에서 비롯된 사실을 되새기는 계기가 됐다" 고 긍정론을 폈다.

이훈범.최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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