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애나 장례식서 '국민의 왕세자비'로 추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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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잉글랜드의 장미' 다이애나는 떠나갔다.

6일 거행된 다이애나 전 영국 왕세자비의 장례식에서 모든 영국 국민들은 비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 65년 제2차대전 영웅 윈스턴 처칠이 세상을 떠났을 때 영국 국민들은 국장 (國葬) 이라는 최고의 예우로 그를 보냈지만 이번 경우처럼 국민적인 애도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지난 1주일동안 영국 전역엔 '다이애나 현상' 이 휩쓸었다.

시신이 안치됐던 런던 시내 세인트 제임스궁에 설치된 조문소는 밤을 새워서라도 조문하려는 사람들로 넘쳤으며, 버킹엄궁과 켄싱턴궁 앞은 조화 (弔花) 들로 산과 바다를 이뤘다.

영국인들이 다이애나의 죽음을 이토록 애도하는 것은 그녀로부터 왕실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다이애나는 엄격함과 권위의 화신과도 같은 현재의 왕실가족과 전혀 다른 '국민의 왕세자비' 였다.

다이애나는 여러 방면에 능한 슈퍼스타였다.

가난하고 힘없고 소외당한 사람들을 돕는 자비의 천사인 동시에 최고의 패션 모델이자 배우, 그리고 훌륭한 어머니였다.

한 영국인 칼럼니스트는 다이애나를 가리켜 영국 왕실의 구각 (舊殼) 을 깬 '모더나이저 (moderniser)' 였다고 표현했다.

그러나 다이애나의 죽음에서 보여준 영국 왕실의 태도는 국민들을 크게 실망시켰다.

그녀의 사망소식이 전해졌을 때 왕실은 사건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두려고 했다.

찰스왕세자는 파리로 날아가 다이애나의 시신을 운구해왔지만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스코틀랜드 발모럴성으로 돌아갔다.

뿐만 아니라 왕실은 위엄을 지키기 위해 애도의 뜻을 직접 표시하려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영국 언론 특히 대중지들은 노골적으로 서운함을 표시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왕실은 뒤늦게 일정을 앞당겨 런던으로 돌아와 엘리자베스여왕이 TV와 라디오방송을 통해 애도의 뜻을 표시하고, 왕실 가족들이 버킹엄궁과 켄싱턴궁 앞에 나가 조문객들과 만나는 등 사태수습에 나섰지만 영국 국민들의 서운함은 아직 가라앉지 않고 있다.

어떻게 보면 다이애나의 죽음으로 인한 최대의 피해자는 다름 아닌 영국 왕실이다.

영국 국민들의 왕실에 대한 지지를 다이애나만큼 잘 이끌어온 사람이 없었을뿐 아니라 다이애나가 떠난 뒤 왕실안에는 그같은 역할을 맡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런던 = 정우량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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