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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는 만담 '만요'를 아시나요…흥겨운 가락과 박자,세태풍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8면

'만요 (漫謠)' 라 불리는 노래들이 있다.

가락과 박자가 흥겹고 가사도 재미있으며 때로는 만담처럼 세태를 풍자하기도 하는 노래들이다.

그러나 커다란 국어사전에도 '만요' 란 단어가 없는 것을 보면 이는 일부 사람들이 '만담' 에 빗대어 만든 말인 것같다.

하춘화가 고봉산과 함께 부른 '잘했군 잘했어' (71년) 는 대표적인 만요다.

이 노래는 34년 김주호.선우일선이 불렀던 것을 현대 (?) 감각에 맞게 가사를 바꾼 것. 노랫말도 재미있고 남녀가 이야기를 주고 받는 것이 영락없는 만담투다.

내용은 더없이 금슬좋은 부부가 나누는 이야기다.

금슬이 지나치게 좋아 탈이다.

3절에 보면 남편이 전세돈 10만원을 받은 것으로 서양춤을 추겠다며 덥석 전축을 사버려도 아내는 그저 "잘했군 잘했어" 다.

어쨌든 푼수같은 두 부부의 대화에 듣는 사람은 즐겁다.

"여보세요 미스김 안녕하세요" 하며 시작하는 '전화통신' (남백송.심연옥.58년) 도 이런 투다.

청년 '박선생' 과 '미스 김' 이 전화로 연애를 하는 내용. 58년에 가정용 전화 대수가 인구 1천1백30명당 1대꼴이었으니 이런 일이 일반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때에는 연애 신풍속도를 그린 노래로서 인기를 끌었다.

만요중에는 '전화통신' 처럼 당시의 세태를 묘사한 것들이 많다.

'시골버스 여차장' (심연옥.56년) 을 들어보자. 버스가 2시간이나 연착했는데도 차장은 태연하다.

여손님이 옥동자를 낳았고 타이어가 펑크나 마차로 끌고 오기까지 했는데 2시간 정도야 괜찮지 않느냐고 태연히 너스레를 늘어놓는다.

그래도 손님들은 싱글벙글. 당시야 시골에서 버스타는 일이 커다란 행사였다.

56년에는 전국의 버스가 3천2백60대에 충남 1백39대 충북 87대에 불과했으니 그럴 만도하다.

그러니 여차장이 어깨에 힘을 줄 밖에. 조금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자. 30년대 중반 우리나라에서는 황금찾기 열기가 전국을 휩쓸었다.

많은 사람들이 무작정 밭을 파헤치고 금을 찾아 만주로 떠났다.

35년에 발표된 김정구의 노래 '노다지 노다지' . '…노다진지 지랄인지 알 수가 없구나/나오라는 노다지는 아니나오고/칡뿌리만 나오니 성화가 아니냐…'

일제시대 국내에는 '왕서방' 으로 대표되는 중국인들도 많이 살았다.

김동인의 '감자' (25년).이효석의 '분녀' (36년)에도 왕서방이 나온다.

독특한 것은 이들 왕서방이 모두 호색한으로 묘사됐다는 사실이다.

노래 '왕서방 연서' (김정구.37년) 도 예외는 아니다.

비단 팔아 모은 돈을 탕진하고도 기생 명월이하고 잠시라도 살게됐으니 그저 '띵호와' 다.

'장군의 아들' 김두한이 활약할 때 종로에는 주먹들 뿐 아니라 이른바 '양아치' 도 많았다.

허름한 차림에 힘깨나 쓰는 척, 괜히 건들거리며 말썽이나 일으키고 돌아다니는 이들을 풍자한 게 김해송의 '개고기 주사' (38년) 다.

"떨어진 중절모자 구멍난 신사바지/꽁초를 피더라도 내멋이야…"

그밖에 영화배우 최민수의 외할아버지 강홍식이 36년 불렀던 것을 서영춘이 다시 불러 히트시킨 '서울구경 (시골영감 기차놀이)' , 한복남의 '빈대떡 신사' (48년) , 서수남.하청일의 '팔도유람' (72년) 등도 대표적인 만요들이다.

혹시 만요를 들으며 그 흥취를 느끼고 싶어졌다면 8일밤 10시15분 KBS1 '가요무대' 를 보면 된다.

권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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