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족민요기행]5. 끝. 하이린市 미장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8면

천지 (天池)에 버금가는 동북지방의 절승 (絶勝) 경박호 (鏡泊湖) 는 발해의 발상지로 일컬어지기도 하는데 그 도중에 있는 하이린 (海林) 시 신안 (新安) 조선족 자치진을 들른 일도 이번 기행에서 큰 즐거움의 하나가 되었다.

자치진의 30대 젊은 간부들인 문현일 당서기와 서봉철 진장 (鎭長) 은 최근 그들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이 한국과의 관계에 있다고 고백했다.

13개 조선족촌을 가지고 있는 신안진에서 조선족은 가장 비옥한 토지를 차지하고 있으며 교육수준도 높아 적어도 지금까지는 가장 잘 사는 층을 형성했다.

그러나 지금 조선족의 위치는 흔들리고 있다.

서울만 가면 한몫 벌어올 수 있다는 꿈에 들떠 생업에 전념하지 않기 때문이다.

앞뒤 안가리고 서울길을 찾다가 사기꾼에게 걸려 땅과 집을 날린 사람도 있고 위장결혼등 무리를 해서라도 한국행을 하려다가 가정이 파괴된 경우도 있다.

이에는 당사자들의 허황된 꿈이 먼저 문제이겠으나 한국사람 가운데는 너무 사기꾼이 많다.

고국사람에 의한 피해자가 너무 많으니 함께 일하는 한족 (漢族) 앞에 얼굴을 들지 못한다.

심지어 얼마를 투자하겠다고 큰소리 쳐 국가기관에서 일하는 그들로부터 잔돈 얻어쓰고 대접받고 돌아가서는 꿩구워 먹은 자리로 소식없는 사람 때문에 문책을 당하기도 한다.

이러다간 조선족이 도매금으로 바르지 못한 민족성을 가진 부류로 매도당할 우려도 없지 않다.

그러나 그들은 경제성장을 이룩하고 민주주의를 실현한 고국에 대해 크게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들의 안내로 먼저 찾아간 곳은 멀리 나즈막한 구릉이 보이는 들판에 자리잡은 미장 (蜜江) 촌. 1백70호가 몽땅 조선족으로 집집마다 담장에 빨갛게 동부꽃이 피어 있었다.

마을에 나무가 없는 것은 다른 데와 다르지 않았지만 논 사이로 난 길에는 두 줄기로 키 큰 가로수들이 빽빽히 들어서 있고 꽤 큰 강물이 마을을 감돌아 흘렀다.

숭화 (松花) 강의 지류인 무단 (牧丹) 강으로 흘러들어가는 물줄기였다.

집의 구조들은 옌볜과 비슷했는데 주민들은 함경도.평안도.전라도.경상도가 뒤섞여 있다.

예컨대 민요를 불러준 사람가운데도 최억문 (83) 노인은 43년 전남 구례에서 부모 모시고 들어 왔다고 했고 그의 며느리 방정자 (62) 씨는 36년 경북 성주에서 아버지 한테 업혀 들어 왔다고 했으며 현운보 (67) 노인은 함경도 회령에서 옌볜 (延邊) 으로 들어 와 살다가 42~43년경에 이곳에 정착했다고 했다.

노래도 갖가지여서 현운보노인은 '창부타령' 과 '도라지 타령' 을 부르고 방정자씨는 스스로 북장단을 치며 '노들강변' 과 흘러간 노래 몇곡을 불렀지만 구례에서 꽤 장성하기까지 살았다는 최억문 (83) 노인은 어려서 배운 '육자배기' 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가 육자배기조로 부르는 '심청전' 의 한 대목은 더욱 들을 만 했는데 그는 풍물의 상쇠도 맡고 있었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신안의 원 소재지인 허핑 (和平) 촌. 그러나 민요를 잘한다고 소개를 받은 이금복 (74) 할머니가 막상 부른 노래는 '칠석날' '울어라 문풍지' 같은 초창기의 유행가였다.

그래도 인근에서 상업중심의 소도시로 가장 먼저 발달한 마을구경과 주일에 한번 서는 장 구경이 듣지 못한 민요를 메꾸어 주었다.

헤이룽장 (黑龍江) 성에서 조선족 학교로는 효시가 된다는 조선족 중심소학교 (1932년 설립)가 이곳에 있는 것도 흥미로웠다.

신경림(시인) ( '신경림의 조선족 민요기행' 은 16일 오전11시 케이블 Q채널에서 방영)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