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가요기획사 맹렬 노크하는 '노래방키드'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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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양파에다 소찬휘를 더하면?바로 저예요!

키 1백66㎝, 몸무게는 비밀! 서태지와 아이들, 젝스키스를 무지무지 좋아하고 잘 불러요. 춤? 무러치는 수준이죠. 밤12시까지 학교에서 자습하니까 호출기로 연락주세요. "

이름깨나 알려진 음반사나 가요기획사에는 예쁜 글씨체로 이같은 내용을 적은 편지와 함께 노래방의 기계음을 배경으로 녹음한 테이프, 비디오캠으로 촬영한 영상물이 하루에 10~20건씩 들어온다.

음반재킷의 가수모습을 그대로 흉내낸 사진까지 동봉한 주인공들은 반이상이 여중생들. 고등학생과 초등학교 5~6년생도 드물지 않게 응모를 해온다.

UP등 중학생이 낀 10대 댄스그룹 출현에 자극받은 로우틴 (중학생 이하) 들이 노래방의 녹음시설을 이용해 즉석 '취입' 한 테이프가 '응시원서' 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주초 조용필.스핀등의 음반을 낸 음반사 웅진뮤직 기획실.

"우리 노래 좀 들어보세요" 라고 전화를 걸어온 고모 (13.강원도 B중1년) 양.

"같은 학교 친구3명과 B.O.B (배스트 오브 베스트) 란 댄스그룹을 결성해 맹연습중" 이라는 그녀는 지난 4월부터 매일 1~2시간씩 동네노래방에서 영턱스클럽의 '타인' , UP의 '뿌요뿌요' 등을 튼 뒤 녹음기를 돌려 '취입' 을 했다.

춤은 '가요톱텐' 등 TV쇼애서 영턱스클럽의 출연장면을 녹화한 테이프를 돌려보며 동작을 외운 뒤 수업이 끝난 교실에서 넷이 함께 연습했다.

안무담당도 따로 있고 보컬.코러스등의 역할분담도 다 돼 있다.

하루 1만원수준의 노래방비용은 돌아가며 용돈을 털어 냈다.

"지금 UP의 여성멤버가 중3으로 최연소가수인데 우리는 그보다 두살이나 적다. 국내최연소그룹으로 방향을 잡고 가면 확실히 뜰 것" 이라는 그녀는 "솔직히 요즘 스무살 넘은 가수중 인기있는 이가 누구있나. 중학생때 멋지게 '뜬 뒤' 공부 열심히 해 좋은 대학에 가고 싶다" 고 말했다.

음반사들에 따르면 고양같은 노래방 출신 가수지망생들은 80%가 양파의 '애송이의 사랑' 을 들고 온다고 한다.

자작곡도 가끔 있지만 '마이 러브' '헤어짐' '슬픔' '나는 그대 눈물의 씨앗' 등 인기댄스곡이나 가요를 짜깁기한 가사.선율이 대부분. 물론 노래방키드중 정식 가수 데뷔의 행운을 잡는 경우도 나오고 있다.

최근 데뷔한 댄스그룹 K.O.S. (킹 오브 사운드의 약자) 의 리드보컬 최윤돈 (17) 군은 중학생때 노래방에서 서태지를 연습한 뒤 테이프를 들고 음반사를 찾아 다니다 이를 걱정한 부모가 그의 손을 잡고 LA에 이민을 가버린 케이스다.

그가 이곳에서도 노래방 출석을 그치지 않자 부모는 2년만에 손을 들었고 최군은 한인 라디오프로의 노래자랑 코너에 나가 솜씨를 선전하다 3년만에 K.O.S 매니저의 눈에 띄여 발탁됐다.

하지만 이는 극히 예외적 현상. 노래방키드들이 보내온 테이프 대부분은 음반사 휴지통으로 직행한다.

기존가요 모방에 불과하고 새로움이 없기 때문이다.

노래방키드는 가수들의 지나친 저연령화와 법으로 출입이 금지된 노래방에 청소년이 들끓는 현실의 산물이다.

영상이미지의 복제에만 능할 뿐 창조적 자기표현에는 약한 신세대의 문화수준을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강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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