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훈범 시시각각

어찌할꼬 이 썰렁한 의원 나리들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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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단순한 국가 간 군대 예절의 차이였지만 양국 합동 군사훈련이니만큼 행동을 통일할 필요가 있었다. 이상의 3군사령관이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미 3군단 지휘관 여러분, 귀국 군대의 그와 같은 절도 있는 행동은 한국전쟁을 승리로 이끈 원동력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앞으로 그렇게 자꾸 ‘벌떡 일어선다면’ 불법 처방한 비아그라를 복용한 것으로 판단해 제재하겠습니다.” 장내에 폭소가 터졌고, 그 후 미군 지휘관들이 회의에서 ‘벌떡벌떡 일어나는’ 일은 사라졌다.

 이처럼 다른 언어로도 통하는 유머가 같은 언어 속에서 먹히지 않는 건 하릴없는 경직성 탓이다. 다들 알다시피 대한민국 국회가 그렇다. 이상희 국방부 장관이 그것의 희생자가 됐다. 얼마 전 그는 국회 국방위 전체회의 직후 미국 하원 대표단을 만나 농담을 던졌다. “조금 전까지 국회에서 의원들과 불편한 질의응답을 해야 했는데 여러분이 나를 구해줬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한·미동맹이다.” 웃음과 함께 서먹한 분위기가 사라졌음은 의심할 게 없을 터다. 그런데 이런 조크를 대한민국 의원들만 이해를 못했다.

며칠 뒤 국방위에서 다시 만난 장관에게 매섭게 따졌다. “개인적으로 모욕감을 느꼈다”는 한 의원은 “사과를 안 할 테면 미국 가서 국방장관을 하라”고 몰아세웠다. 다른 의원은 “장난으로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는다”며 스스로 개구리가 됐다. 육군참모총장까지 지낸 또 다른 의원은 “농담을 했다는데 당신이 개그맨이냐”는 이상한 논리로 후배 장관을 다그쳤다. 이 썰렁한 의원 나리들을 어찌할꼬. 국방부 장관이 어쩌다 의원들에게 그토록 인심을 잃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미운 며느리 달걀 같은 발뒤꿈치도 미운 이런 사람들에게 대화와 타협을 기대하는 건 애초부터 무리지 싶다.

국방위 촌극은 양반인 편이다. 의원들에게 억울한 사과를 해야 할지라도 “북한이 도발하면 정밀 대응 타격하겠다”는 장관이 국민은 믿음직스럽다. 10년 퍼준 대가로 핵미사일 공포를 받은 가엾은 우리 국민은 국회 문방위와 로텐더홀에서 벌어진 작태를 보고 좌절하고 만다. “전쟁 같은 금융위기의 불길이 치솟고 국민의 신음과 원성이 하늘을 찌르는데, 남들은 위기 극복에 단 1분도 허비할 수 없다고 결의를 다지는데, 한국의 정치권은 여전히 ‘나만 옳다’는 기싸움뿐”이라는 지난 연말의 한 신문 사설을 오늘 자에 옮겨놓아도 전혀 어색할 게 없다. 기싸움이 뼈 부러지고 허리 다치는 몸싸움으로 악화됐을 뿐이다. 그렇게 스스로 권위를 까부르니 국민의 대표가 의사당 안에서 주먹으로 얻어맞는 초유의 사태가 빚어지고 공복(公僕)인 장관한테서 ‘깽판 국회’란 비아냥을 듣는 게 아니냔 말이다.

 비아그라로도 치료 불가해 보이는 거대 여당의 임포텐스와 집 밖에서만 상대를 찾으려는 소수 야당의 막무가내 경직성은 18대 임기 내내 ‘불임 국회’로 만들 게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어제 우여곡절 끝에 파국은 면했다지만 임종 시기만 늦췄을 뿐 근본적 원인 치료에 닿기는 한참 모자라 보인다. 어쩐지 급한 불 끄고 보자는 두루 꿰매기 꼼수로밖에 비치지 않는 까닭이다. 여야 합의로 번 100일 동안 우리 의원 나리들이 이 말을 가슴 깊이 새겼으면 좋겠다. 『플루타르크 영웅전』에 나오는 얘기다. “정치가는 항상 위험이 따른다. 백성의 뜻만 추종하면 그들과 함께 망하고 백성의 뜻을 거스르면 그들 손에 망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훈범 정치부문 차장